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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남자에게 납치당하는 꿈

by 규리

미리 말하자면, 엄마는 꿈을 잘 꾸는 편이다.


예전엔 아빠가 일하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날 것 같다며 조심하라 했는데, 며칠 안 돼 정말 사고가 났다. 그래서 엄마가 조심하라고 하는 날은, 길가를 다닐 때도 조심, 집에 들어가서도 조심하곤 했다. 엄마의 꿈은 나쁜 일을 예측하는 데 있어 대체로 맞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가, 내가 프러포즈를 받은 다음 날 아침에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꿈에 딸이 나왔어.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납치하는 꿈을 꿨다. 당분간 조심해.”


더 놀라운 건 나도 그날 밤에 이상한 꿈을 꿨다. 낯선 대머리 아저씨가 날 납치하는 꿈. 그런데 진짜 소름 돋는 건, 남편도 똑같은 꿈을 꿨다는 거다. 세 명이, 같은 날, 같은 인상착의의 아저씨에게 납치당하는 꿈을 꾼 거다.


막 프러포즈를 받고 행복한 바로 다음날, 웬 대머리 아저씨에게 납치라니, 너무 억울하잖아..


다음날 남편은, 나를 집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외출도 최소화하고, 당분간 약속은 미루면 좋겠다고.

한주간은 별안간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는 생활을 했던 거 같다.


일주일 쯤 지났을 까, 남편은 미신이라곤 믿지 않는 사람인데, 갑자기 꿈 해몽가에게 문의를 했다고 한다.

남편도 불안했던 모양인데, 돌아온 해몽 결과가.. 진짜 골 때렸다.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꿈입니다


결론은 이거다.

꿈속 납치범은... 남편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왜 그 아저씨가 대머리였는지는 미스테리다. 남편은 아무리 머리가 빠져도 대머리가 될 수 없는 숱부자인데 말이다. 여튼 프러포즈를 받은 날 엄마가 이 꿈을 꾼 건 정말 두고두고 코미디다. 엄마가 예전부터 말한 결혼 조건이 있긴 했다. 1. 서른 넘어 결혼하면 좋겠다. 2. 나이 차 많이 나는 결혼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조건만을 이야기하신 엄마의 말을 지키지 못한 이 결혼은 엄마에게 다소 예상 못한 일이었을 거고, 엄마 입장에선 명백한 납치는 맞다. 스물다섯밖에 안 된 딸이, 여덟살 차이나는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모쪼록 결혼식날까지 나를 아까워하신 엄마는, 이제 남편을 무척 아끼신다.


결혼할 당시는 너무 어린 나를 빨리 데려간 남편이 조금 미웠을지도(?) 모르지만, 나한테 잘하는 모습 보고 마음이 편해지신 듯 하다. 그저 서로 잘 맞아서 결혼한 것 뿐인데 꿈 속 납치범이 되어버린 남편에게 억울한 면이 있긴 하지만..


모쪼록—

한창 예쁠 때 납치해간 남편, 나한테 더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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