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억 안 나는데. 넌 기억력도 좋다야."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신다. 엄마에겐 너무 사소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걸까? 하지만 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마음에 남는 일이 많다.
7~8살쯤 되었을 어느 겨울날, 머리는 뜨겁고 몸은 추웠다. 엄마는 무슨 일인지 저기압인 상태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마에 물수건이라도 대야겠다 싶어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을 담아 방으로 가져왔다.
그러다바가지에 담아 온 물을 이불에 온통 쏟고 말았다. 엄마는 ‘아이고, 내가 진짜 못살아! 지겨워 죽겠네!’라는 표정으로 벌컥 짜증을 냈다. 열에 들뜬 얼굴로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내 모습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다음 일은 9살 때쯤, 초봄에 있었던 일이다.
베란다에 걸려 있던 봄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가려는데 점퍼가 덜 말랐다. 가는 길에 금방 마르겠지 싶어 축축한 채로 입고 집을 나섰다. 엄마가 어느샌가 쫒아나와 왜 마르지도 않은 옷을 입고 가냐며 화를 냈다. 등짝도 한 대 맞은 듯하다. 엄마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엄마는 툭하면 싸우고 말썽을 일으키는 우리 삼 남매에게 "남편이나, 새끼들이나."라는 말을 푸념처럼 자주 하시곤 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자식 때문에 이어가던 엄마의 그 말은 바늘처럼 내 마음을 콕콕 찔러댔다.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 탓일까?
난 늦은 사춘기 시절부터 엄마에게 모진 말을 수시로 했고 여전히 살갑지 않은 딸이다.
그런 내가 아이 낳고 키우며 우리 엄마의 인생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30대 후반에 늦깎이 엄마가 된 나는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이 힘에 부쳐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서른이 되기도 전에 자식 셋을 낳아 키우던 엄마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밀린 빨래를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개킬 때면 또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매일같이 해야 했던 자식 셋의 빨래는 얼마나 많았을까?
밥 하기가 지겹고 오늘은 또 뭘 먹나 싶은 날에도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자식 셋, 삼시 세끼, 30년 넘게 챙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처럼 엄마 생각을 하셨으려나.
자식이 하나여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노심초사하며 산다. 자식 셋인 엄마는 우산 장수, 부채 장수 자식을 둔 엄마처럼 맘 편할 날이 많지 않았겠구나 싶다.
‘우리 엄마는 그때 도대체 왜 그랬을까?’하고 엄마가 밉고 이해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살다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떤 엄마이든 아이에게 실수하는 날이 있고 상처 주는 순간들이 있겠지. 우리 엄마도 그랬지. 나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미성숙한 사람이기에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날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엄마! 그때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내 딸이 울먹이며 말하는 날도 올 것이다. 또 세월이 흘러 ‘그래, 엄마도 많이 노력했어.’라며 나를 이해해 주는 날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