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아 교정 비용을 마주했다. 그 순간, 돈은 단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준비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금액에 등줄기가 서늘해졌고, 나는 '이 정도는 하죠 뭐'라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평온한 척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동네 시세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안일함이 현실이 되어 되돌아오는 듯했다. 마치 무심코 열어본 판도라의 상자가, 생각보다 더 어두운 현실을 꺼내 보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 불편한 현실감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주는 압박감에 더해, 다른 사람의 태연한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됐다. 사실 비보험 진료가 비쌀 거라고는 짐작했다. 하지만 숫자를 직접 보았을 때 머릿속은 잠깐 멈췄다. '동공지진'이라는 말이 괜히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눈을 아래로 떨구고는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털리기 싫은 내 통장 잔고가 슬며시 뒷걸음질치는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검진 결과를 듣기 전, 바로 앞 환자가 128만 원이라는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결제했다. 그가 간호사의 말에망설임 없이 '일시불이요'라고 말하며 카드를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내는 그의 손길은 묘하게 단단해 보였다. 그 모습에서 단순한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어떤 변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익숙함과 태도를 느꼈다. 이날 가장 부럽게 들렸던 말은 단연 '일시불이요'였다. 나도 5만원이 넘는 금액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만, 치과에서 들은 건 차원이 다른 '일시불'이었다.
그 장면은 내게 하나의 예시처럼 깊게 남았다. 아이를 위한 지출이라면 평소 용돈과 체육 활동비처럼 매월 일정하게 나가는 금액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교정 진단비처럼 전혀 예기치 못한 지출 앞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어떻게 살아야 저 큰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했다. 비상금을 마련해두고 있었음에도, 그 순간 치과라는 공간 안에서 묘하게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그 분위기 안에서, 마음속 깊은 어딘가가 설었다. 마치 든든한 방패를 들고 있다고 믿었는데,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화살에 방패를 써보지도 못하고 맞아버린 느낌이었다.
물론 돈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이 삶에 여유를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필요한 치료 하나를 결정하는 일조차 이토록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질 뻔했다. 다행히 이내 마음을 다잡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사보험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상금이 있음에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금액 앞에서, 나는 일상 속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무게를 느꼈다.
삶의 크고 작은 변수에 대비하는 재정적 준비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일이고, 나아가 아이에게 '돈'의 가치와 경제적 자립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전할지에 관한 책임과도 연결된다. 나는 과연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