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공감으로 자라는 아이, 소통하는 부모되기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감이온다' 세 번째 강연에서는 이호선 교수가 급변하는 시대에 부모가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강연했다. 강연은 청중들이 서로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호선 교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먼저 내민 손을 '용기'로, 그 손을 기꺼이 잡아준 마음을 '수용'이라고 정의하며, 소통의 시작이 바로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세대, '알파 세대'
20세기 활자와 종이로 성장한 기성세대와 달리, 21세기 AI와 알고리즘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알파 세대'로 불린다. 이들은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익숙해 옆 친구보다 통제된 알고리즘의 세계를 더 편안하게 느낀다. 이로 인해 사회적 연대감이 약해지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호선 교수는 이러한 '미로의 시대'에 부모의 경험은 더 이상 자녀의 멘토가 될 수 없으며, 아이들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시대의 부모는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선장'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항해할 수 있도록 돕는 '등대지기'가 되어야 한다. 등대지기는 묵묵히 빛을 비추며 아이가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알려주고,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대신해 키를 잡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시민
이 시대 부모의 역할은 명확하다. 바로 아이들을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다. 독립성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고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용기에서 나오고, 민주성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는 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더해, '공동체성'이라는 시민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나 또한 누군가를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내 아이의 안전은 내 아이만 똑똑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아이까지 함께 품어줄 때 비로소 확보된다. 이는 이기적인 부모의 시선이 아닌, 공동체를 품는 어른의 시선이다.
소통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성찰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은 단순히 대화하는 행위를 넘어, 서로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호선 교수는 이를 위해 매일 10페이지씩 독서하고, 그중 한 문장을 외우는 습관을 제안했다. 이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내면을 채우고, 언어적 표현력을 길러 자녀와 더 풍요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은 '심리적 포만감'을 제공하며, 우리 스스로를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호선 교수는 '40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나이와 성숙함이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50이 되어야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60이 되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의 단계에 이르는 것처럼, 어른으로서의 성장은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아이에게 관대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조망'의 자세와 '온기'의 중요성
이호선 교수는 미로를 헤쳐나가는 두 가지 방법으로 벽을 따라가는 방법과 위로 올라가 미로 전체를 내려다보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부모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미로의 벽을 따라가려 애쓰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전체를 조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멀리 내다보는 '조망'은 부모에게 관대함을 가져다주며, 작은 순간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은 우리의 IQ를 원하거나 더 많은 정보 처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라포(rapport)' 즉, '온기'다. 모성과 부성은 본능이 아닌 선택이며,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부모는 이미 위대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선택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기꺼이 손잡아 줄 수 있는 온기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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