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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금의 나

by 지예


넘쳐버린 찻잔
아이가 생긴 건 결혼 5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늦은 만큼 더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매일이 처음 같았습니다. 제 마음의 그릇은 마치 물 몇 방울만 담아도 넘칠 듯한 찻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정 하나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제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별일 아닌 듯한 상황에서도 글썽거리는 아이의 눈물은, 움츠러든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 눈물의 원인이 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짜증을 억누르려 애써도 마음속 답답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말입니다.


고상하지 않은데 고상한 척, 너그럽지 않은데 너그러운 척하는 위장된 태도는 제 안에 억지스러운 긴장을 만들어냈고, 스스로를 억압하는 감정이 쌓여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려 애쓰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눌러 담아둔 감정이 작은 틈을 타고 새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돌변한 제 모습을 제가 감당하지 못해 관계에 금이 가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마음의 찻잔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물, 나의 고비
아이의 행동은 엄마가 되기 전, 한 인간으로서 제가 품고 있던 몹쓸 감정들을 들쑤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의식하며 최대한 이성을 되찾으려 애썼습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무릎을 꿇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집중하며 이유를 찾아나갔습니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아이도 참 예민한 시기였습니다.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날카로워진 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속이 뒤죽박죽되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무심히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억누르며, 그 감정을 얼굴 가득 일그러진 표정 속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곧 이성을 다잡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면서 다시 미간을 펼 수 있었습니다. 표정은 감출 수 없었지만, 날 선 말 대신 멈추어 선 것은 조금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 멈춤이 아이에게 전해졌을지는 몰라도, 제 안엔 작은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유치원 졸업과 학교 입학이라는 커다란 전환점을 앞둔 아이는 자연스레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생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목에 가시가 박힌 것 같다며 밥을 삼키지 못했고, 답답하다며 숨을 몰아쉬고 작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아이의 모습은 제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새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겠거니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다독이며, 엄마로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습니다.


mother-6935336_640.jpg Image by Jupi Lu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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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적보다 정서 함량에 초점을 맞추는 육아인. 성향 다른 남매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양육인. 적당함과 게으름의 균형을 즐기는 지구인.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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