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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채워가는 아이의 시간

by 지예


아이의 성실한 등, 엄마의 미소


아이들 보온병에 담을 물을 데우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넉넉하게 데운 덕에 남은 따뜻한 물 몇 모금으로 천천히 몸을 깨웠습니다. 오늘 아침엔 무얼 해야 할지 냉장고 앞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재료들을 꺼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아침상이 차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밥솥의 증기밸브는 고요한 아침의 배경음처럼 일정한 소리를 냈습니다. 조리에 사용한 그릇들을 바로 씻을 여유도 있었습니다. 조물조물 브로콜리를 무치고, 계란찜에 참기름을 두른 고소한 향을 깊이 들이켰습니다. 하루 시작이 좋아서였을까요. 특별한 재료도 아닌데, 반찬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울수록 마음 한쪽에서 작은 뿌듯함이 피어올랐습니다.


어느새 거실 책상에 앉은 첫째 아이의 성실한 등을 마주했습니다. 씻으러 가는 소리만 들었는데, 어느새 새벽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부지런한 아침의 시작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싶다가, 곧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일 년 내내 중학 준비를 현실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지요.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 날에 기말고사가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전날 늦게까지 사회 과목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더니, 휴일엔 쉬겠다며 투덜거리다가도 결국 스스로 작정하고 이른 아침 책을 펼쳤나 봅니다.


밥상이 완성되면,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마음속으로 잠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목표가 생기면 깊이 몰입합니다. 아직 온전히 주도적으로 설정한 목표는 아니지만, 선생님이 제시한 방향에 기꺼이 자신을 맞추는 유연함을 갖추었습니다. 저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음을 느낄 때면, 문득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해보려는 자세와 작은 성취에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아이는 자기 속도로 잘 자라고 있다는 믿음이 커집니다. 공부할 땐 몰입하고, 놀 땐 확실히 노는 아이는 그렇게 꿈같은 성장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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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적보다 정서 함량에 초점을 맞추는 육아인. 성향 다른 남매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양육인. 적당함과 게으름의 균형을 즐기는 지구인.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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