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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에서 시작된 적당한 거리

by 지예


부모됨의 거리, 그 시작점에서


사랑은 한 가지 얼굴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연인의 설렘, 친구의 믿음, 가족의 따스함처럼 속도와 온도, 모양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어렵습니다. 다른 관계가 불꽃처럼 타오르거나 폭풍처럼 격정적으로 찾아올 수 있지만,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점진적으로 스며들고 천천히 뿌리내리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천륜’이라 부르며 끊을 수 없는 강한 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끈을 지나치게 움켜쥐기보다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 생명을 온전한 개체로 인정하고, 언젠가 독립된 한 사람으로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첫째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대꾸하지 못해 찾아오는 어색한 순간이 있습니다. 자녀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이러한 미묘한 거리감은, 아이를 처음 마주했던 그 어색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아이의 성장 배경과 행동의 이유를 깊이 알지 못했다면 거친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이는 성장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이해하지 못할 언행은 없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 분명 아이는 독립을 할 것입니다. 아이의 푸르른 성장기와 저의 성숙한 나이듦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허전함은 있을지언정 허탈함은 덜 할 거라 믿습니다.


마치 작은 새가 둥지를 떠날 날을 대비하듯, 부모의 사랑은 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도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거리를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그래야 관계가 숨을 쉬고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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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적보다 정서 함량에 초점을 맞추는 육아인. 성향 다른 남매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양육인. 적당함과 게으름의 균형을 즐기는 지구인.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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