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필수 조건
저녁 식사 후, 하루 일과의 종지부를 찍는 분리배출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위협과 마주쳤다. 목줄 없이 다가온 개의 위협적인 짖음 앞에 몸은 본능적으로 굳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당시의 감각은 개에 대한 단순한 공포를 넘어, 보호받지 못하는 '나'의 권리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문제는 그 뒤에 느릿느릿 걸어오던 견주의 태도에서 증폭되었다. "이리 오라"는 구두 지시 외에 어떤 적극적인 제지도 없었고, 내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나이가 많아 불가하다"는 무책임한 변명만 내놓았다. 이 짧은 몇 분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것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호명하면서도 그 가족 구성원이 타인에게 끼치는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시선이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선 시대에, 우리는 반려동물을 '반려'를 넘어 '가족'으로 부르며 그 지위를 격상시켰다. 하지만 진정한 가족에게는 '가정교육'의 의무가 따르듯, 반려동물의 보호자에게도 사회적 안전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의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목줄과 입마개 등의 안전조치다.
현행 법규는 '반려동물과 외출 시 목줄 등의 안전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처분을 넘어,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진심 없는 사과나 "나이가 많아 불가하다"는 변명은 법과 사회적 의무를 경시하는 태도이며, 피해자가 느낀 공포와 무력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최근 한국 사회의 주요 화두인 저출생 문제 속에는 양육의 어려움과 사회적 지원의 부족에 대한 고민이 깊이 스며있다. 이와 대비되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급증하는 현상은,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이 반려 동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듯, 그 반대의 상황, 즉 타인의 안전이 반려동물의 자유보다 등한시되는 일 역시 허용될 수 없다.
우리는 공존을 고민해야 하지만, 그 공존의 원칙은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그만큼 보호자는 더 엄격한 자기 검열과 법적 의무 이행을 통해 공공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진정한 '가족'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서 시작하며, 그 책임은 결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회피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