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출신 싱가폴 취업 성공기
꿈은 정말 이루어질까?
-나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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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1
증거2
그리고 나는 지금 두둥
싱가폴에 왔다 ! ㅎ
21년. 대만에서 한해를 보내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일할기회를 얻으면서 보다 뚜렷해진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해외취업!
언제나 꿈꾸긴 했으나 내가 과연? 어떻게? 무슨수로? 하는 메커니즘적인 의문에 항상 진전시키지 못했던 꿈이었다.
그것을 대만에서 생각보다 쉽게 이루고 나니, 이후 생각이 뻗치기 시작했다
오 이게 되네?
막연하기만 하면 눈앞에 그려지질 않으니 주춤거리던 것들이, 된다는 걸 확인하면 그리고 뚜렷해지면 실행력은 무서울정도로 붙어버린다. 나는 그런편이다.
그래서 과연 내가? 어케? 하던 것들을 모두 한번 경험만 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해치우고 바로 복사 붙여넣기, 복사 붙여넣기해버리는 놀라운 실행력을 발휘하고 성과를 낸다. 대학시절 나를 정의했던 수많은 토론대회 수상 경력도 그렇고 작년부터 이어져온 나의 공간임대 사업도 그중일부다. 그것이 나를 관찰했을때 내가 가진 큰 강점.
돌아와서, 이렇게 해외취업을 한번 하고나니까 그 이후도 , 또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을것 같다는 그야말로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대만에서의 직장생활을 약 1년정도 더 하면서 중국어를 마스터해버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비자문제, 전세연장 등의 이슈로 잠시 한국에 들어왔던것이 화근이 되어 대만의 워킹비자를 포기하게 되었을 때도 그러했다. 혹은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있을런지도.
한번 했는데, 두번은 왜 못해? 그리고 대만이 됐는데, 다른데는 왜 못해? 꼭 대만일 필요는 없잖아?
그렇게해서 대만이 아닌 다른곳은 어디가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영어를 쓸수 있고, 또 중국어를 쓸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취직기회가 많고 자본이 몰리는 도시여야 할테고, 그렇다고 아시아를 떠나기엔 너무 막연하고 병원문제등 한국에 자주 오갈수있는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모여 닿은 곳은
바로 싱가폴이었다.
어려울 것 없었다, 그 모든 조건이 겹치는 곳은 딱, 싱가폴이었다.
그렇게 그곳이 어딨는지, 취업시장상황, 기후, 페이수준도 모른채, 정말 순진무구한 표면적인 이유들만 가지고 나의 싱가폴에 대한 구직다짐은 굳혀지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꽂히면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듯 하다.
이 다짐이 굳혀진 시기로 말할 것 같으면, 전직장(대만에서 취직한 회사이자,한국에 돌아왔을때 서울본사에서 일하던곳)을 그만두던 때이다. 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곧 대만으로 돌아갈 티켓인 공작증(워킹비자)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대만에서 공작증을 받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기에 그 권리를 내려놓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흔치않은 기회라는 것, 그리고 다른 곳으로의 도전이라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열나게 줄다리기로 씨름을 하던 중, 결정적으로 공작증의 덫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준것은 그야말로 근자감(한번했는데 두번못할까?)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해보고싶은일(사업)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결심을 내리면서, 내게 주어진 마지노시간은 당해 10월이었다. 전세연장이슈가 해소되는 10월말 그 시점을 기점으로 하자. 그때가 5월이었으니 내겐 약 5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그 반년 남짓안되는 시간내에 편한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다 때려치고 사업에 도전할 생각은 결코 못했다) 하고싶던 사업을 시도해보고, 싱가폴로의 이직을 도모해보자. 지금 생각해도 되게 빡쎈데, 난 원래 이렇게 사는 편이다. 시간이 얼마가 주어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걸 알기에. 그리고 충분할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And what happened is ,,
10월이 그냥 지나가버리게 된다. 그렇게 11월이 되고 12월이 되고..
우선 첫째로 생각보다 사업의 잘되서 공수가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공수가 들어서 멀티의 규모가 예상을 훨씬 초월하게 되었고, 풀타임 직장생활, 강의, 그리고 임대사업 모두를 감당하기에 내 정신력이 남아지를 못했다. 당연히 다른곳으로의 이직?을 도모할 여유공간은 남아있지 않았고 말이다. 이직은 커녕.. 내 일상생활의 루틴조차 사수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엉망인 삶이 11월부터 지속되었던듯하다.(현재까지 ING이다) 다행히 사업은 잘되서 그 규모가 훨씬 비대해졌고 말이다.
이렇게 사업이 커져가고 있는데 이걸 두고 어디를 가는게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마 당시에 손에 쥐고 있는 일들에 너무 매몰되어 큰 시야로 사안을 보지 못했던 것도 한 몫했던듯하다.
그때 한창 나를 감싸던 질문이 있다. 풀타임 잡을 꼭 해야하는가?
사업이 커지면서 사업소득이 풀타임의 보수를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풀타임에 들어가는 공수와 시간의 절반이 뭐야. 반의 반의 반도 안되는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성과였다.
헌데 풀타임에서는 어떠한가. 내가 하고 있는일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도 모르겠고, 정신력이 포화에 다달아서 실수만 가득차고 있지, 하여간 내 대부분의 정신력을 차지하는데도 그만한 대가,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풀타임 커리어는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한다는 것을 한다. 우선 페이가 엄청 뛰어나지 않더라도 내 삶을 보장(?)해주는 고용안정성의 측면에서 보험의 성격이 분명있고, 또 거기서 창출해내는 나름의 개인적,사회적,커리어적 가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이에 대해 한눈에 봤을때 모르겠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좀더 탐색해보려 하지 않았던 안일함을 인정한다.(그렇다, 나는 풀타임만 하면 굉장히 수동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정신머리가 남아나지 않는 그 상황에서는 시야가 공수 대비 보수라는 일차원적인 시각밖에는 잘 떠오르지 않았던듯하다. 그런 관점이라면, 정말이지 풀타임잡은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풀타임에 내 인생전반의 공수가 들어갔다는 기회비용의 측면(아직은 매몰비용으로 삼고싶지 않았다), 또 내가 원하는 삶을 가능케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 등을 생각했을때,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행위자체가 갖는 그야말로 상징성(간땡이가 부어야 할 수 있는 단행)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생각을 귀결시키는 것을 막아준듯하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11월이, 그리고 12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하나의 생각에 닿게 된다. 아진짜 힘들어 죽겠는데, 나 곧 서른살되네?
그렇다, 나는 공교롭게도 작년에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었다. 이게 내게 잭팟을 가져다 줄줄은 꿈에도 모른채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잭팟이 되었는가
아직 '특별한 기념'이라는 것에 눈이 반짝이는 엔프피인 덕에 바빠죽겠는 와중에 turning in to my 30s는 반드시 특별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조차 11월막바지에야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다행이었다.
(나의 또다른 강점인듯하다. 할일은 개많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재밌고 기똥찬 일들에 대한 촉수는 계속 세워놓는것, 그 아이디어로 가능성을 창출해내는것, 꼭 계속 가져가고 싶은 특성이다 )
어떻게 내 마지막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로 들어가는 첫날을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까.
후보로 떠오른것은 해외에서 정말 팬시한 호텔에서 카운트다운하기, 해외로 못가면 어디 외딴곳(이를테면 울릉도)으로 가서 캠핑을 하는것 등등
이정도였다.
겨울에 울릉도에서 캠핑하면 얼어죽는다는 얘기에 그럼 해외로 가볼까 생각하던 중에, 불현듯 잊고있던 곳이 떠올랐다. 내가 분명 이번년 중반쯤, 꼭 가겠노라 다짐으로 해놓았던 잊혀졌지만 여전히 살짝 빛나고 있는 바로 그곳. 싱가폴이었다.
와! 꿈이 살짝 빛을 잃었고 상황이 많이 여의치 않아졌지만, 내 첫삼십대의 날을 그곳에서 보내면 어떻게든 내년에는 가는것을 도모해보자는 결의를 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셀프자극주기 인셈이다
하지만 연말이라 비행기표는 60만원에 달했고, 호텔방은 거의다 매진 아니면 무시무시한 가격을 뽐냈다. 그나마 남아있는 캡슐호텔이 하물며 일박에 15만원이었으니, 물가가 높다고는 들었지만 이쯤되니 싱가폴이 문젠지 연말이 문젠지 감도 안왔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또다른 빛나는 눈의 소유자 엔프피 CC가 내게 확신을 주었다. 자기라면 비행기가 70이라도 가겠다고. 그만큼 의미가 있으니 말이다! 다른날이 아니라 올해 12월 31일이여야하고, 또 다른곳이 아니라 싱가폴이여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나 강력하게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싱가폴에 작년 연말에 오게되었다.
이번 싱가폴 여행은 내게 좋은 자극제를 주기위해 무조건, 무조건 좋아야한다는 다짐한줄과 함께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환상적인 연말연초를 이곳 싱가폴에서 보냈다.
회사에 약 9일의 휴가를 내고 왔는데, 정말이지 최고의 신의 한수였다.
10월부터 회사일에 많이 시달리고 있었는데 휴가를 쓰면서도 사실은 재택을 하게될것이라는 염두를 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런 굴레와 속박, 눈치를 벗어던지고 조금은 이기적일지라도, 본연의 naked한 시간을 싱가폴에서 보냈다.
그리고 목표했던대로, 싱가폴에서 살고 일하고 싶다는 자극을 풀게이지로 충전하게 된다.
싱가폴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곳에서 행했던 나의 데일리 루틴들이라고 답하겠다.
마리나베이 일대를 돌며 아침 조깅을 했던 시간,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과 내적 친분을 다지며 함께 조깅을 한 그시간을 잊지 못한다. 재작년에 꿈꾸는 삶을 자세하게 적으면서 딱 묘사해놨던 그 장면(위 링크 참조 :'나는 요즘 이렇게 산다')에 내가 들어가있었다. 일시적인 fake reality이긴 하지만 꿈에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또 이스트파크 공원까지 라이딩을 한일, 그곳에서 모닝조깅을 한일, 호텔수영장을 내것인거마냥 헤엄친일, 친구들과 캠핑을 즐긴일,그곳에서 만난 반짝이는 사람들과 월드와이드 로망을 나눈일 모두 꿈만 같았다.
싱가폴에서 일부러 현지의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 한국인, 현지인, 현지에 사는 외국인 나눌것 없이 말이다. 만나는 이들마다 그들에게 내가 왜 싱가폴에 왔고, 이곳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그들로부터 역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https://brunch.co.kr/@twtw/105
그렇게 풀로 동기부여가 된 상태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싱가폴 취업을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옛날 한창 기력이 강하던떄에 비해서는 우스운 수준이지만, 끄적대더라도 현지 한국인 커뮤니티도 가입하고 취업을 위한 조사도 병행했다.
그렇게 우연히 알게된 구직정보커뮤니티에서 내가 지원해볼법한 직무공고를 보게 되었고, 본 바로 당일 지원을 하게 된다. 급하게 영문레주메를 수정해서 일과시간이 지나기전에 전달을 완료했다.
그리고 약 2주, 길게는 3주의 채용과정, 총4번의 면접을 거치고 나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지원한 그 포지션에 최종합격 소식을 듣게된다.
한국에 돌아온 시점이 1월2일이고, 최종합격을 한 시점이 1월19일, 그리고 정해진 온보딩 날짜는 2월13일이었다.
모든게 정말 거짓말처럼 벌어졌다. 아니 이렇게 쉽게 된다고?
한국에 돌아온날 친구를 만나 맥주한잔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나 싱가폴에서 리프레시 완전 제대로 했어. 이제는 술도 마실거고, 또 싱가폴로 정말 가보려고. 마지노는 이번년 상반기!'
이 상반기도 정말이지 타이트하게 잡았던 목표였다.
근데.. 한달도 안되서 이 일들이 일어난것이다.
나처럼 커리어에 일관성이 없고, 경력도 짧은 사람이 단순히 영어와 중국어가 되는 korean 스피커라는 이유로 이렇게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것도 경력도 다 인정받고, 연봉을 거의 두배가까이 올려가면서 말이다..!
내가 싱가폴 취업에 부스터를 밟게된 또다른 결정적인 계기도 한가지 있다.
바로 현직장에서의 불안정한 위치였다.
내 주변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인데, 이번 싱가폴 여행을 기점으로 직장내에서 내 status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게 되었다. 그전부터 심각한 정신력과부하로 퍼포먼스가 좋지 못했고, 그와중에 길게 자리를 비우던때에 책임감없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유가 컸다. 그렇게 팀내 업무배제까지도 이야기가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이상 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앞으로도 잘할 자신이 없는 일을 하며 형편없고 비참하지만 현상유지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모든게 과부화된 상태로 남아있거나, 지금이 바로 변화를 꿰할 타이밍이라고 여기고 shift하거나.
그렇게 강한 동기를 가지고 이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으로 구직과정에 열을 올렸다.
지금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활활 타오르며 임한것처럼 보이지만, 채용스케줄에 맞춰 면접이 있을때만 열심이었지 그외에는 굉장한 무기력에 휘감겨있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그 무기력이었다. 할일은 쌓여있는데 그 앞에서 overwelmed되어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그 상태말이다. 여행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고 다시 capacity 50%를 남겨두는 여유의 상태로 회기하는 것이 올 상반기 초의 목표이다 ㅠ
당시 굉장히 비참하고 나도 내가 참 형편없다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워낙 잘 까먹고 본체가 긍정적이다 보니, 그리고 내가 잘못한걸 알기에 심한 우울감으로 빠지진않았지만, 당시의 생각과 감정들에 매우 숱한 브런치감들이 포진해있다. 그때 브런치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역시나 무기력에 압도되어 글을 남겨놓지 못한게 아쉽다.
최종오퍼를 받고, 싱가폴로의 이주가 확정된지 이제 딱 한달이 되었다. 지난 한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후딱 갔다. 물론 정말 많은 것들을 했기에 하릴없이 사라져버렸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퇴사처리를 했고, 집정리를 했고, 사업을 대신맡아줄 매니저를 고용했고 조금더 오토가능하도록 체계를 짰고, 집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했고, 머리를 했고(매우 마음에 드는 히피펌을 했다), 친구들을 만났고, 등등등
싱가폴에 와서는 단5일만에 집을 구했고(너무나 마음에 드는 조건으로 구하는 행운을), 입주전까지 있을 단기임대도 구했고(할렐루야), 은행처리,비자처리,폰개통을 했고 만날 사람들 만났고 첫 일주일 출근도 해냈다.
출근에 대해서 첫주차 소감을 짧게 남기자면
우선 회사가 다국계 대기업인지라 회사에 다양한 인종이 그것도 많이 있다. 한국인을 포함해 싱가포리안,말레이시아인,인도인,일본인,태국인,호주인,베트남인,러시아인 등등
그래서 그런지 한국회사에서 느끼던 묵직한 느낌이 없다. 라이트하다. 근데 그게 놀랍게도 한국인을 만나면 다시 좀 생긴다. 한국인만 만나면 왜 그럴까? 한국인이라서야 아니면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야? 아님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 잘 알아서야? 허참 그래서 한국인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는 우스한 이야기..
아직까지는 마음에 든다. 첫 한달은 트레이닝을 진행하기에 사실 크게 어려울것이 없을 수도. 하게될 업무도 익숙해지면 크게 챌린징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려면 트레이닝에서 열심히 해야겠지. 일을 제대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오랜만에 생겼다. 그래서 정말 잘해보려고 한다! 아무리 promising하지 않아보여도 분명 보지못하는 기회가 있을 수 있고, 또 맡은바에 대해서 완벽하게 해내는 professional함을 갖고싶다. 나를 뽑아준데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있고 말이다.
이제 얼추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밀린 내 개인적인 업무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것들을 이번달 밖으로 가져가지는 않을 예정이다. 조금 고될지라도, 무조건, 무조건 이번달 안에 끝내려한다.
그리고 싱가폴에서의 삶을 앞으로 자주자주 많이 기록하려고 한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기다려줄 이들이 있으려나? ㅎ
마지막으로 싱가폴라이프의 다짐 겸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것을 적으며 이 긴 대장정의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싱가폴 라이프]
-multi-cultural working environment 실컷 경험하기
-nice하고 cool한 사람되기
[경험]
-싱가폴/말레이 이곳저곳 부지런히 explore and record. 싱가폴 여행책 도장깨기 해도 좋음.
-매주 라이딩/ 매달 캠핑혹은 여행하기, 커뮤니티 참여하기
-매일 조깅/나이트루틴(샤워청소요가일기명상데일리플랜&리포트) 유지하기
[성취]
-developable 한 직무 찾고 깊이 만들기 , 이직해서 연봉올리기 ->networking in company/korean community , developing linkedin
-영어 비즈니스레벨 마스터, 중국어 회화레벨 마스터 ->reporting in eng/finding mandarin speaker friend and partner
-싱가폴 라이프와 영감 아카이빙 하기, IG와 브런치/블로그 활용, daily/weekly basis
[개인프로젝트] 올해 : 월급외 소득 5M유지, 10M 여지탐색, 총자산 200M
-임대사업 완전 최적화, fully-automated
-강의사업 플랫폼 독립, 기관/기업 온라인 출강
-강의 아카이빙 채널 키우기
-부동산 투자 탐색, 첫 투자 이행
[파트너]
가능하다면,, 파트너를 이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제 좀 장면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좋은 신호같다.(더 까다로워지려나
미국과 접점이 있는, 동아시아계 훈남이면 좋을것같다
ㅋㅋㅋㅋㅋ
내가 써놓고도 웃기군.. 이제 조건,외모,국적 까지 보겠다는 말인데
세상에나 내가 이렇게나 까다로워지다니 나도 놀랍다.(아무 조건도 없던 사람)
미국과 접점인 이유는 훗날 미국에서 살며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때문이고
동아시아인 이유는 내가 생각보다 인종에 위화감을 느끼는 편이라는것을 인정했기 때문이고(매력을 느끼는 range)
훈남인 이유는 욕심을 부려보겠다는 생각이고..... 가장 타협될부분일듯 하지만,,
뭐 무엇보다 이 모든걸 초월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대화와 상대에 대한 commitment이다.
한국에서도 못만났는데 여기서는 뭔가 더 잘 만날수있을것같다는 근자감으로 오긴했는데
막상오니 막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