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이 ‘크로우즈’라고 말한 식당에 다시 갔다.
우리 집 식사 장소는 거실 앞 좌식 테이블이다. 예전엔 식탁에서 마주 보며 먹었다. 식탁 의자의 나사가 풀려 조여야 하는데, 귀찮아서 미루다 보니 식사 장소가 바뀌었다. 거실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TV를 보고, 그중에서도 유튜브, 또 그중에서는 <고독한 미식가>를 종종 본다. 그러다 보니 일본 여행에서 <고독한 미식가>에 나온 식당을 찾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침 돗토리에 그런 식당이 있었다. 내가 본 에피소드는 아니었지만, 철판 요리 식당이라는 말에 침부터 고였다.
가는 길에 너무 졸려 편의점에 잠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했더니 브레이크 타임 3-40분 전에 도착했다. 길가에 위치한 작은 식당은 ‘마츠야‘라는 이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철판 요리 냄새에 압도당했다. 대부분의 테이블이 차 있었다. 바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주인장에게 두 사람이라고 했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못 알아 들었다. 멀뚱히 있으니 ‘크로우즈’라고 다시 대답을 하더라. 점심 장사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식당을 나왔지만, 이미 옷에 배어버린 음식 냄새 때문인지 미련이 한가득 남더라.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남편이 저녁에 다시 가자고 했다. 여행 동선이 안 맞지만, 동선 따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건 여행이 아니라 일이지 싶어 그러자고 했다. 혹시나 저녁에도 이용을 못 할까봐 걱정돼 서둘러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식당 문에 일어로 문구를 써둔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불길했다. 번역기를 돌렸다. ‘오늘 예약 손님으로 만석이라 이용이 어렵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럴 수가. 언제 또 이곳에 올 지 모르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발길을 돌리려는데 남편이 그래도 들어가서 말이라도 해보자고 했다. 들어오지 말라고 써붙여놨는데 뭘 굳이 열어서 확인하나 싶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낫겠지 싶어 별 기대 없이 문을 열었다.
역시나. 직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손으로 엑스 모양을 그리며 뭐라고 말을 했다. 이용이 어렵다는 뜻 같았다. 그런데 점심때 내게 ’ 크로우즈’라고 말한 주인장이 나를 보더니, 바에 앉으라고 했다. 나를 기억한 것 같았다. 찜해두었던 몇 가지 메뉴를 시켰다. 맥주가 빠지면 서운하다. 맥주를 마시며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돌아서려고 했는데, 남편 덕분에 문을 열어 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어쩔 수 없지 혹은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많이 하는 말이다. 체념도 수긍도 빠르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난 분명 문을 안 열었을 테다. 어쩔 수 없다며 다른 식당에 갔을 테다. 나와는 달리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남편을 항상 나와는 다른 사람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채우고 보완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알았다.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었다. 남편은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우마이!’라고 말했다. 노포 느낌도 좋았고, 바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철판요리 버전의 <심야식당> 같았다. 요리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도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여행지에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내가 맥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솔직히 더 먹고 싶었는데 참았다. 다음에 또 이곳을 여행한다면, 그땐 이 식당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남편과 함께 술을 마셔야지. 일본어도 좀 배워서 다른 손님들처럼 주인장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