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성실하게 즐기기만 하자고 다짐한다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마다 문화회관에 간다. 백수인 내게 고정적인 스케줄이 생긴 것이다. 월요일 이른 오후엔 꽃꽂이 수업을, 수요일 밤엔 재봉틀 수업과 금요일 오전엔 가죽 공예 수업을 듣는다.
하나같이 두 손으로 꼼지락 거리며 배우는 수업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머리 쓰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신청한 수업도 머리를 써야 한다는 걸 듣고 나서야 알았지만.) 커리어와 관련된 수업도 싫었다. 일이 하고 싶어 지거나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생길 것 같아서.
개강날, 수업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을 찾아갔다. 강의실 앞에 붙여진 시간표를 보며 올바르게 찾아왔는지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강의실의 풍경도 선생님도 수강생도 다 낯설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수업이 시작됐다. 앞으로 수업에서 무엇을 할지, 준비물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여러 수업을 들으니 수업마다 선생님의 스타일이 다른 게 느껴졌다. 꽃꽂이 선생님은 사근사근하고 뭐든 친절하게 설명했다. 매번 수강생들의 꽃꽂이 작품을 하나씩 피드백해주고, 칭찬과 보완점을 골고루 알려주셨다. 수강생들 작품을 하나씩 사진으로 찍고는 단톡방에 공유해 주더라. 재봉틀 선생님은 달랐다. 설명을 해주시고는 일단 해보라며 우리를 풀어둔다. 다행히 짝꿍이 있어 서로 들은 걸 공유하며 실습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 가죽공예 선생님은 무심해 보이지만 단계마다 시범도 해주고, 수강생들이 잘하고 있는지 살피며 무심하게 칭찬을 한다.
수업마다 수강생들도 다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꽃꽂이는 이른 오후에 하는 일정 때문인지 과목 때문인지 연령대가 높았다. 왠지 밖에서 꽃을 보면 어머나! 하면서 꽃 사진을 마구 찍으실 것 같은 우리 엄마 같은 분들. 괜히 친근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더라. 저녁에 배우는 재봉틀 수업은 대부분 직장인 같았고, 연령대가 다양했다. 퇴근 후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에 정신이 확 들곤 한다. 가죽공예 수업엔 유일하게 남자분들도 있다. 실습하며 종종 수다를 떠는데, 남자분들은 묵언수행하듯 조용하게 임한다.
수업의 공통점도 있다. 몰입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들 숨죽이고 꽃을 피우는 일에, 재봉틀 소리를 음악 삼아 옷을 만드는 일에, 명품을 만드는 장인처럼 가죽 소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매 과목의 수업을 두 번씩 들었다. 모든 수업이 다 내 기대와 달랐다. 가장 관심이 갔던 재봉틀은 생각보다 어려워 당황스러웠던 반면, 꽃꽂이는 꽤나 재밌었다. 가죽 공예는 원데이 클래스로 몇 번 해본 적이 있어 좀 자신 있었는데, 개뿔 - 칠칠치 못한 나와는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참 재미있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감각이 좋다. 신입생이 된 기분도 든다. 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을 찾아가는 것부터, 아직은 낯선 수강생들과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일,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척하며 하나씩 눈치 보며 실습해 보는 일까지 이 모든 게 참 오랜만이다.
얼른 신입생 딱지를 떼고 능숙한 학생이 되고 싶지만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지금은 수업이 있는 이 삶을 성실하게 즐기기만 하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