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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나만의 방법

여행에서 일상으로 잘 돌아오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by 백수쟁이

여행이 좋다. 어디든 언제든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설렌다. 떠난다는 건 곧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힘들수록 여행이 간절해지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여행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말 그렇다. 여행 없는 일상은 가능하지만, 일상이 없는 가운데 여행을 떠난 적이 나는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잘 떠나가는 여행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 일상으로 잘 돌아오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여행을 앞두고는 여러 가지를 준비하듯이, 여행의 끝과 일상을 앞두고도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번의 여행 끝에 알게 되었고, 몇 가지 나만의 방법이 있다.


지난 월요일, 2박 3일간 안동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빗길에 운전을 했고 돌아오자마자 꽃꽂이 수업을 들어 몸이 고단했다.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드러눕고 싶었지만 천천히 일상을 회복해 보기로 했다.


챙겨갔던 여행 짐들을 하나씩 제 자리로 돌려보냈다. 여행의 때가 잔뜩 묻어있는 옷들도 꺼냈다. 여행할 때는 신나게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왜 이리 손끝으로도 만지기도 싫은지 빨래가 시급하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바로 이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집의 숨결을 되돌려주는 일이다. 집을 비운 동안 집에 쌓인 먼지를 닦아낼 차례이다. 먼지떨이로 시작해 청소기, 막대걸레까지 도구를 바꿔가며 청소하다 보면 어느새 땀이 줄줄 난다. 화장실 청소까지 끝내면 공간 청소는 끝!


그리고 이제는 내 몸을 돌볼 차례다. 여독에 청소로 흘린 땀에 온몸이 고단하고 찝찝한데, 그만큼 샤워의 효과는 크다. 아주 상쾌하다는 뜻이다. 내 몸에 익숙한 세면도구로 씻으니 왠지 더 잘 씻기는 느낌이 든다.


샤워 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잠깐 누웠다. 집에 돌아왔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쉬다가 저녁을 차렸다. 남편과 나누고 싶어 안동에서 사 온 닭개장을 데웠다. 몇 가지 반찬을 준비해 식사를 완성했다. 일상으로의 아주 완벽한 복귀이다.


별 거 없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청소하고 나를 씻기는 일을 가장 먼저 한다. 이게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이다.


예전엔 안 그랬다.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다는 생각에 씻지도 않고 드러눕기 일쑤였다. 여행짐을 풀지도 않은 채 며칠씩 지내기도 했다. 그래도 피로는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기분 좋게 다녀온 여행이 짐짝 같았다. 이걸 여러 번 경험하고야 알았다. 여행의 피로는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와야 풀린다는 걸. 그러려면 여행을 짐을 정리하고, 일상의 공간을 돌봐야 한다는 걸 말이다.


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여행지를 떠나는 순간일까? 집에 도착하는 순간일까? 내게 여행의 끝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순간이다. 그때야 비로소 나의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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