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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하기 위해 꾸준히를 버렸다.

드디어, 나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by 백수쟁이

브런치에 뭐라도 써야 하는데.


내 글을 검사해 주는 선생님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그럴수록 브런치에 쓸 만한 것도 없어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요즘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건 아닐까.


퇴사 후 한 달 동안 평일이면 거의 매일 글을 썼다. 두 달 차에 접어든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게 고작이다. 매일 쓰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고, 안 쓴다고 누가 꾸짖는 것도 아닌데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역시 꾸준히 하는 건 또 실패인가‘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지 못하는 사람. 나 스스로를 이런 사람으로 생각한다. 시작하기 전에는 시간과 비용, 여러 조건을 따지느라 오랫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야 겨우 발걸음을 떼는 반면, 시작하고 나면 금세 지치고 질려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피아노와 클라이밍을 배울 때도 그랬다. 시작하기 전에는 가격비교, 상담과 후기도 다 따져 보고 겨우 실행에 옮겼는데, 1-2년 배우고는 그만두었다. 늘 핑계는 있었다. 야근으로 저녁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고, 이사로 학원까지 거리가 멀어졌다. 이 두 가지 핑계가 아니어도 무슨 핑계든 만들어 그만두었을 테다, 분명.


그래서 걱정이었다. 느슨해진 글쓰기가 마치 비 오기 직전의 먹구름 같았다. 이번에도 또 그만두고, 꾸준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증거만 하나 더 남길 것 같았다.


일기장을 꺼내 꾸준하지 못한 나에 대한 글을 쓰다 이런 질문으로 이어졌다.


한평생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세상에 몇 개나 될까. 시작한 모든 걸 꾸준히 하려면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모자라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꾸준히 하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을 즐기지도 못하고 의무로 여기게 되니까. 그러다 하지 못하면 나를 자책하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그냥 해보고 싶은 해맑은 관심 앞에서 ‘꾸준히’가 발목을 잡을 테니까. ‘네가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아?’하고, 내 속의 내가 나를 계속 의심할 테니까.


그리고 하나 더, 꾸준히는 ‘매일매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 어디에도 매일매일이란 뜻은 없었다. 나 혼자서 매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매일매일보다는 ’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에 중심을 두면 어떨까. 어떤 일은 매일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일은 일주일에, 한 달에, 일 년에 한 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이어나간다면 이 또한 꾸준히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6월에 이어 7월에도 쓰고 있으니까. 피아노이나 클라이밍도 다시 시작한다면 ‘꾸준히’를 갖다 붙일 수 있다. 30대에 배우던 것을 40대에 이어서 계속 배우는 것이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꾸준히‘에 눌려 있던 내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느낌이다.

드디어, 나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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