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이 아니라 일상에서 풀어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열 시간을 자고도 겨우 일어난 아침, 컨디션이 영 별로다. 노트북을 켜고 커피를 들이켰다. 그만둔 회사에서 협업 제안이 왔다. 마침 일과 돈에 고민이 있었다. 회사 생활은 다시 하기 싫지만 돈은 벌어야겠다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단골 고민이다. 퇴사한 회사에서 다시 나를 찾는다는 게 지난 회사 생활을 인정받는 기분도 들었다. 좋은 기회 같아서 덥석 하겠다고 했다.
좋은 기회여도 일은 일인지라 스트레스가 따라오더라. 돈 버는 일은 역시 쉽지 않다. 담당자의 피드백은 빨랐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여러 번 되물어야 했고, 사전에 공유되지 않아 일을 두 번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협의되지 않은 일을 요청하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완곡히 나의 역할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강력히 나의 일이라고 답을 해서 당황스러웠다. 인볼브 되기 전 체크하며 받았던 답변들을 끄집어내어 상기시켰더니 상호 간에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단다. 상호라는 말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개는 더 떠올랐는데, 결과적으로 그 업무는 원래의 담당과 자리를 찾았다.
이 일로 하루 종일 짜증이 났다. 나의 협업 고민에 은근슬쩍 여러 일이 넘어올 것 같다던 친구의 말을 좀 더 곱씹었어야 했다. 꽃꽂이 수업도 까먹고 말씨름에 정신이 팔렸다. 수업 직전에 가지 말까 고민하다 꾸역꾸역 수업에 갔다. 만사 제쳐두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이 문제보다 내 만사가 더 중요하니까. 수업 중에도 이게 떠올라 괴로웠지만 꽃에 집중하려 애썼다. 집에 돌아오니 일의 흔적이 그대로, 덩그러니 놓인 노트북과 업무 노트를 흘깃 노려보다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있으면 이 짜증도 내게 가만히 들러붙어 있을 것만 같다. 공원에 갔다. 이른 저녁에도 사람이 많았다. 농구하는 어린 친구들, 달리고 걷는 사람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이따금씩 일이 떠올랐는데 그럴 때면 재빨리 다른 생각을 했다. 저녁 뭐 먹지, 무슨 글을 쓰지 등 내게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생각은 돌고 돌아 과거의 ‘일하는’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걱정도 생각도 많은 일꾼이었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늘 나를 다그쳤다. 회사와 매출이 하루빨리 안정되길 바랐다. 내 몸과 마음의 안정이 무너지고 있는 건 몰랐다. 얼마 전 핸드폰 건강 앱에서 내 휴식기 심박수가 8주째 감소했다는 데이터를 보고, 안도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온 건 왜였을까. 8주 전과 달라진 건 단 하나, 퇴사뿐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안정을 되찾은 건 다행한 일이지만, 일을 할 때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려면 오늘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일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일상의 끈을 꽉, 악착같이 부여잡아야 한다. 일의 스트레스는 일탈이 아니라 일상에서 풀어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것도 피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먼지처럼 조용히 쌓인다. 가만히 있으면 더 깊이 스민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 탈탈탈 털어내야 하는 것이다. 컨디션도 기분도 별로였던 하루지만, 그 와중에 수업을 가고 산책을 다녀오고 오늘 꽤 괜찮았구나 하며 오늘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오늘을 떠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