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나만의 속도로 피어나면 되니까. 꽃도, 나도
꽃꽂이 수업이 내 일상에 이렇게 깊이 스며들 줄은 몰랐다. 장미나 수국처럼 익숙한 꽃들만 알고 있던 내게, 오리목이나 다정금나무 같은 생소한 화초를 만나는 건,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듯한 설렘이었다. 꽃이나 열매에만 눈길을 주던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이파리와 줄기의 라인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업에서 실습한 화초를 가져갈 수 있어, 매주 우리 집에 새로운 화초로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기쁨도 컸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꽃꽂이 수업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꽂이의 기쁨이 금세 차게 식었다. 갈수록 수업이 어려웠다. 이 수업은 한국화 꽃꽂이 수업으로 한 달 전부터 경사형 꽃꽂이를 배우고, 매주 실습을 했다. 경사형 꽃꽂이는 가장 중심이 되는 1번 주지를 경사 형태로 꽂은 뒤, 2,3번 주지와 주지 옆을 보완하는 두 개의 종지를 꽂는다. 그리고 주지 사이에 꽃을 꽂아 완성한다. 화초를 꽂을 위치와 방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단순할 것 같지만, 매번 다른 화초를 다듬고 꽃꽂이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수업 시간이면 선생님이 화초를 나누어주고, 화초별 특징을 알려 준다. 그리고 각자 화초를 다듬고 구조에 맞춰 화초를 꽂아간다. 완성한 뒤엔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으며 꽃꽂이를 조금씩 수정한다. 마지막으로 완성작 촬영을 하고, 화초를 챙겨가는 것으로 나면 수업이 끝난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지만 다른 수강생들은 한 시간 남짓이만 완성하고 여유롭게 마무리한다. 나는 거의 매번 꼴찌였다.
몇 주째 수업 시간마다 끙끙 앓듯 실습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꽃꽂이를 하며 화초의 라인도 함께 살펴봐야 하고, 주지로 어울리는 라인을 고르는 게 첫 관문인데 여기서부터 늘 막혔다. 선생님은 C자로 휘어진 가지나 곧고 힘있는 줄기를 추천하셨지만, 내 눈에는 도무지 그 ‘예쁜’ 라인이 어떤 건지 보이지 않았다. 또, 잎이 너무 많으면 무거워 보이고, 너무 적은 건 빈약해 보인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화초 사이의 리듬감과 균형감에 대한 이야기도 나에겐 너무나 추상적으로만 들렸다. 다른 수강생들이 깔끔하게 마무리할 때, 나는 혼자서 계속 고민했고, 결국 주눅이 든 채로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곤 했다. 선생님은 다정하고 섬세한 분이라 모든 이의 완성작에서 좋은 점을 찾아 꼭 칭찬해 주셨다. 처음엔 그 다정함이 그저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칭찬의 온도 차에 민감해졌다.
- 주지 라인을 정말 잘 찾으셨어요.
- J님은 확실히 감각이 있어요. 위치만 좀 더 신경 쓰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이런 칭찬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위치를 잘 잡았어요.”였다. 그 말을 들을 때면 ‘교과서대로 잘하지만, 감각은 없다.’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지난 월요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흥미를 성실함으로 부여잡고 수업에 갔다. 여전히 어려웠고, 역시나 꼴찌로 피드백을 듣게 되었다.
- 꽃꽂이 어렵지요? 하지만 오늘 정말 잘했어요. 이렇게 시원한 라인을 찾아서 하나씩 해보면 되는걸요. 그리고 오늘도 위치를 정말 잘 잡았어요. 지금은 초보니까 화려하게 하거나 응용을 해보는 것보다는 위치부터 잘 잡으면서 기초를 쌓아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걸 잘하고 있으니까, 오래 꽃꽂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취미반이니까 부담 갖지 말자구요.
울상이 된 내 표정을 들킨 건지, 주눅 든 마음을 읽은 건지 선생님은 그날따라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선생님의 피드백에 물을 머금은 꽃처럼 마음이 싱그럽고 화사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갈수록 수업이 어려웠던 건 수업의 난이도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의 문제였다는 걸. 나 스스로 다른 수강생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게 완성하지 못해서 꼴찌를 하는 걸까. 도대체 뭐가 예쁜 라인이고, 뭐가 비어 보이는 거길래 남들은 매번 듣는 감각 있다는 칭찬을 나는 못 듣는 걸까, 하고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손끝을 무디게 만들고, 꽃 앞에서의 집중을 흐트러뜨렸다. 애초에 이 수업은 취미로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즐겁자고, 일상에 생기를 더하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비교와 조바심에 스스로 그 의미를 흐려버리고 있던 것이다.
다음 수업부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화초에 집중하고, 감각보다는 교감에 기대며 화초를 대하려 한다. 느리고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나만의 속도로 피어나면 되니까. 꽃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