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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안식 휴가

그동안 우리 부부의 노고를 치하하며,

by 백수쟁이

남편이 태국으로 떠났다. 퇴사 후 함께 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는데, 그가 먼저 떠났다. 친구들과 여행도 좀 하고, 한 달 살기를 할 숙소도 현지에 가서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한 달 뒤, 태국으로 가 조우하기로 했다.


그와 결혼하고, 우리는 따로 여행을 많이 했다. 그도 혼자 훌쩍 떠나고, 나도 그랬다. 회사에서 안식 휴가를 받고, 이탈리아에서 한 달 지내다 온 것도 그와 결혼을 하고 난 뒤의 일이다. 여러 번 경험했음에도 남편을 떠나 보낼 땐 왠지 울적해진다.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갈 거면서 그가 혼자 가는 게 괜히 섭섭하고, 남편 없이 혼자 생활하는 게 왠지 기대되면서도 쓸쓸하다. 퇴사 후 일주일만에 떠나는 남편이 서둘러 내 곁을 떠나는 것 같아 무정해 보이면서도 혼자 남은 나를 자꾸 걱정하는 그가 애틋하다.


공항에서 그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니 왠지 더 쓸쓸했다. 일주일동안 붙어지내서 그런지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울적한 마음이 더 불어나는 것 같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창문을 열고, 집안 곳곳의 먼지를 털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집의 구조를 조금 바꾸었다. 남편이 있었다면 상의해야 했겠지만, 아쉽게도 그가 없으니 내 입맛대로 바꾸었다. 더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 몇 가지를 버렸다. 화장실 청소도 했다. 세제를 뿌리고 청소솔로 박박 문질르고 찬 물을 끼얹었다.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모처럼 남편 없는 고요한 밤이라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그의 출국 얘기를 늘어놓다가, 그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남은 한달 여 시간을 ‘안식 휴가’로 생각하기로 했다. 요즘 많은 회사가 복지로 내세우는 휴가 복지 말이다. 예시로 3년 근속시 한 달 리프레시 휴가를 주는 제도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도 어느덧 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신혼 초기에 툭하면 부딪히고, 내일은 없다는 듯 싸운 우리이지만, 이제는 우리가 언제 싸웠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가 배려하고, 서로를 길들여진 덕분이다. 그런 우리의 노고를 치하하며 우리가 우리에게 주는 안식 휴가가 지금 이 시간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싶었다.


안식 휴가라고 생각하니 서운함도 쓸쓸함도 다 사라졌다. 오히려 이 시간이 보너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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