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그니 Jul 20. 2016

포켓몬 고, 밀레니얼 세대를 호출하다

우리가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들 수 없는 이유

당연한 사실 하나를 먼저 말하고 시작하자. '포켓몬 고'는, 1981년에서 1990년 경에 태어나 포켓몬을 보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에게 주어진, 첫 번째 복고풍 히트 상품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X세대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은. 음, 내기하자고 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맨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도 밀레니얼 세대 중 한 명일 거라고 확신한다. 


응답하라 밀레니얼 세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사실 근거는 없다. 아직 '포켓몬 고' 이용자를 연령대별로 분류한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자료가 나오기엔 이 게임이 나온 지 한 달도 안됐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하지만 취재를 다닌 미국 기자들이 하나같이 하고 있는 말이 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지금 포켓몬을 잡으러 걸어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였다고. 맞다. 이번 포켓몬 고- 붐의 주역은 바로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핵심 소비 계층으로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다. 다른 나이 때의 이용자도 장난 아니게 많기는 하지만.

이들에겐 포켓 몬스터가 어릴 적 추억이자, 현재 진행형인 친구다. 포켓 몬스터가 처음 출시된 것이 1996년이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출시되고 있으니,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해가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좀 더 나이 든 세대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봤던 만화 영화 속 마징가 Z를 서른 살이 되었더니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게임이 나왔더라- 정도의 느낌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증강 현실로 도시에서 스타 크래프트를 즐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만우절 장난이란 이름의 킥 스타터


2012 구글 만우절 장난


이제 와 갑작스럽게 시작된 흐름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노리는 복고풍의 제품은 예전부터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제품들의 특징이라면 만우절 장난으로 간을 보고, 반응이 좋으면 킥스타터를 통해 자금을 모은 다음 상품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랄까.


예를 들어 아이패드를 복고풍 게임기로 변신시키는 '아이케이드'는 이름 흐름의 시조 격인 제품이다. 2010년 만우절에 만우절 장난으로 소개되었다가, 반응이 좋으니 진짜로 만들어서 팔겠다고 나섰다. 얼마만큼 팔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것은 분명하다.




올해 안에 출시될 예정인 스마트 보이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게임보이로 바꿔주는 기기로, 이 제품 역시 만우절 장난에서 시작했다. 이 기기만 있으면, 오리지널 포켓 몬스터를 그 느낌 그대로,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가 있다. 이 밖에 두 번째 가정용 게임기 시대를 열었던 닌텐도의 패미컴 역시 11월에 미니어처 형태로 재출시된다.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 시절과 게임기/게임 캐릭터는 때기 어려운 만큼, 이런 스타일의 게임기들은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싫든 좋든, 밀레니얼 세대를 노린 레트로 상품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풍년일 전망이다. 


포켓몬 고가 다른 게임과 정말 다른 점



그렇다면 한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증강 현실'이나 '위치 기반 서비스'는 포켓몬 고의 히트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밀레니얼 세대는 네트워크와 함께 성장한 첫 번째 세대이고, 이들은 네트워크가 증폭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포켓몬 고' 붐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SNS를 통한 이슈 확산이 결정적이었다. 증강 현실로 찍은 사진은 몬스터를 찾는 재미와, 찾은 몬스터를 찍어서 SNS 올려서 함께 즐기는 재미를 동시에 줬다. 


하지만 이 게임이 다른 게임과 다른, 정말 특이한 점은, 게이머들끼리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맺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포켓몬스터 게임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 게임은 게이머들이 현실 세계로 뛰어나가 누군가를 만나고, 교류하게 만든다. 


현실 세계에 중요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서로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럼 마치 게스트 하우스 같은 방에 모인 사람들 같은,  ‘짧은 유대 관계’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다. 포켓몬 고에 대한 팁이나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짧은 우정을 나누고, 헤어진다.

포켓몬 고는 게임 성격상, 강제 정모가 자주 일어나게 된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모르겠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이렇게 공통의 목적으로 서로 짧게 모여서 만남을 가지고 헤어지는 것에 익숙하다. 잉그레스를 설계/개발하고 운영했던 나이안틱 랩스는 '포켓몬 고'에서 그런 부분을 잘 만들어냈다. 예전 자신들이 만들었던 게임의 장점이었던 것을 그대로 '포켓몬 고'로 갖고 왔다. 처음부터 굉장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이렇게 '게이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온갖 사건 사고가 계속 터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들 수 없는 이유


자세히 보면 피카추가 보인다. 실제로 판매되었던 란제리



이쯤 되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게임을 만들 수 없을까?라는 질문. 까놓고 말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기술 자체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던 것이고, 친숙한 캐릭터, 요즘 말로 지적 재산권(IP)은 필요하면 가지고 있는 회사와 라이선스를 맺으면 된다. 

... 문제는 여전히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가-다.

뜬금없이 들리는 가? 예를 들어 '포켓몬 고'-가 한국에서 먼저 출시했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몬스터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녔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 사회는 뭔가 소년/청년들에게 인기가 있다- 싶으면,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으면, 일단 까고 보는 경향이 있다.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 오락실에는 '지능 계발'이란 간판이 붙어야만 했고, '뽀로로 Go'를 만들겠다면서도 '교육적인' 요소를 첨가시킬 것이라고, 안 그러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한다. 어떤 게임이 인기라면 그 게임이 무엇을 말하는 가와 어떻게 말하는가, 그리고 게임을 즐기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데, 일부의 부정적인 부분을 전체인 것으로 포장하고 욕하며 매타작 하는 것에 너무 능하다. 개발사들 입장에선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도 너무 강하고. 


... 덕분에 우리는 상상력의 뿌리가 되어줄 어떤 콘텐츠를 가질 수가 없었다.  

콘텐츠 = 수출 효자의 공식을 넘어서기 위해서



물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게임/애니메이션/만화 같은 콘텐츠들을 수출해서 돈만 벌어다 주면 되는 공산품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뭔가 하나 히트하면 바로 '한국형 xx'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런 인식 기반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대체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쥐라기 공원 영화 한 편의 수입이 현대 자동차 수출과 맞먹는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걸까. 


덕분에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콘텐츠를 죄지은 듯이 몰래, 나쁜 일 하는 듯이 숨어서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가 먹고살 것들은, 문화다. 바로 이런 것들이 만드는 문화다. 포켓몬 고-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미래에 먹고살 것들은 그렇게 세상에서 욕을 먹는 것들과 욕을 먹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다른 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우리가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버렸거나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쫓아내 버린 것들이다. 


... 90년대에 기반을 둔 게임은 이제 세계를 지배하겠다고 덤비는데, 그 게임을 보는 (어떤) 사람들 수준이 90년대만도 못하다면 슬프지 않을까. 


당장 많은 것이 바뀌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뭔가 사람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먼저 함께 즐기는 마음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그게 나중에 등장할 새로운 세대가 새롭게 먹고 살 거리가 생기는 일이기도 하니까.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는 것으로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포켓몬 고, 증강현실 게임이라 성공한 것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