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6시 30분 되니 눈이 떠졌다. 전날 기가 너무 많이 소진되어 일찍 잠들었기 때문이다. 신체리듬이 느긋해졌다 빨라졌다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며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연한 삶과 태도는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영혼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걸 원했고 그걸 실천하고자 했기에. 유연함은 잉크처럼 내 몸의 피를 서서히 물들였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수채화처럼 번져갔다.
9시가 되니 눈이 다시 피곤해졌다. 유통기한 지난 인공눈물 때문인지 서늘하게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 때문인지. 눈과 함께 몸도 마음도 노곤해졌다. 침대에 좋아하는 여름담요를 올려두고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축 늘어진 몸이 침대로 순식간에 꺼져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알람 없이 다시 눈이 떠졌다. 창밖 여인들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려오며 나를 깨웠다. 서로에게 안부인사를 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길거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차 시동소리가 들리더니 길거리는 다시 태초의 조용한 여백을 남겼다. 그 여백은 나를 10살 무렵 한 기억으로 데려갔다. 마루 바닥에 누워 낮잠 자고 눈떠보니 동네여인들이 온화한 웃음소리로 서로에게 인사하며 서있는 그때로.
선풍기는 고개를 돌리며 축 늘어진 내 몸을 말려주었다. 바싹 마른 내 몸은 다시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있었다. 붕 떠서 하늘하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내 몸이 영혼을 불러 손잡고 있었다.
침착되는 시간 59초 남짓.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이게 되는 시간 1초 남짓.
60초 남짓한 시간에 새로운 내가 날 맞이했다.
제주바람냄새 맡으며, 햇볕아래 마른 먼지를 바라보며, 타닥타닥 노트북 키보드를 누르며. 은은한 커피 향을 맡으며. 새로운 나는 내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