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때로 비슷해보인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작별을 마주하지만, 작별하지 않아야만 하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아파도 계속 상처를 건들여주며 딱지지지 않게 해야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끔찍하지만 연약해서 작별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봐주고 기억해야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왜 그래야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 책은 제주 4.3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교과서에서 이름을 보긴 했으나, 구체적인 사건의 진상이 기억나지 않았다. 영상을 몇 개 찾아보니 정치적인 문제로 역사에서 다룬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댓글을 찾아보니 아직도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음해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기사에도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고 비난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으니, 작가가 왜 이 작품을 고통 속에서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처참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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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작가인 경해의 꿈으로 시작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꿈.
수천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사람만하게 서있고, 그 위에는 눈이 쌓여있다. 그리고 바닥에서는 물이 밀려왔다 무덤들을 쓸고 내려간다.
경해는 이 꿈을 영상으로 만들고싶었다. 목재공방을 하는 동시에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친구 인선과 언젠가는 이 꿈을 꼭 영상으로 만들어보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4년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곤 갑자기 인선에게 연락이 온다. 경해가 달려간 곳은 병원이었고, 인선은 목재 작업중 손가락이 잘렸고, 봉합 수술을 받은 뒤였다. 신경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봉합된 부위를 바늘로 찔러 끊임없이 고통을 느껴야한다는 말에 경해는 끔찍함을 느끼고 그 장면을 마주하기도 힘들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인선이 경해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인선이 키우던 새 때문이었다. 인선은 앵무새를 2마리 키웠는데, 그 중 한마리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한 마리를 제주도 집에 두고왔는데 너무 새는 연약한 존재라 며칠을 그냥 두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인선은 경해에게 자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새를 꼭 살려달라고,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인선이 제아무리 지금 당장은 책 작업을 하지 않는 백수라해도, 갑자기 짐도 없이 제주도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몇 번 거절했으나 끈질긴 인선의 부탁에 경해는 바로 비행기를 타러 간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에는 아주 많은 눈이 내렸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인선의 집은 아주 멀고 외딴 동네였으므로 경해가 인선의 집까지 눈과 바람을 헤치고 가는길은 험난했다.
결국 인선의 집에 도착했지만, 새의 생명은 살리지 못했다. 설상가상 전기도 나가고 보일러도 꺼져버려 경해는 인선의 옷을 몇 개 껴입은채 잠을 청한다.
일어나보니 서울에 있어야할 인선이 제주도 집에 와있었다. 손도 다친 흔적이 없었다. 앵무새도 언제 그랬냐는듯 살아있었다. 둘은 전기가 나간 집 안에서 인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참혹하고 끔찍했던 그때의 사건과, 그 사건 뒤에 사라진 오빠의 흔적을 찾으며 살았던 인선의 어머니,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인선이 쫓은 그날의 흔적들.
그리고 둘은 경해의 꿈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그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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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눈을 피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잠시 들여다봤다. 오히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보려는 거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건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이었다.'
이 책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두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왜 작별하면 안 되는건지 담고있는 문장.
너무나 아프고 똑바로 직면하기 끔찍한 상처이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자꾸 건들여줘야한다는 것. 잊으면 안 된다는 것. 작별하지 않아야 하다는 것.
우리 나라에서 제주 4.3 사건을 지금까지 조용히 묻고, 가르치지 않았던 그 과거를 비판하며 역사적인 상처에 직면해야한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비유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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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러 다녔대.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힌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있었대. 눈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로는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 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 그랬을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웠대.'
이 책에서 인선의 어머니가 겪었던 장면들이 묘사된다.
언니의 손을 잡고 운동장에 죽어있는 사람들을 헤치며 오빠를 찾아야했던 상황. 죽은 사람들 얼굴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손수건으로 걷으며 오빠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그 죽은 얼굴을 자세히 직면해야했던 두려움. 얼마나 무서웠는지 상상도 할 수없을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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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사람들을 바다에 줄세워놓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쏘고, 바로 바다로 밀어 넣어 핏자국 하나 남지 않게 했다는 묘사가 계속될 때마다도 끔찍했지만, 나는 이 말이 가장 끔찍했다.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산 사람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기억. 사방에 널린 바다를 볼 때마다, 매일 식탁 위에 올라오는 생선을 볼 때마다 그 죽음을 떠올렸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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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의 어머니는 오빠의 흔적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리고 인선은 그 흔적을 찾던 어머니의 사정을 알고 난 뒤, 어머니의 행동을 잇는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사건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 살았다. 작별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사람이 너무 괴로운 것 아닌가.
그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그 흔적 하나를 찾기 위해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흔적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살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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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책은 내용만 보았을때도 재밌지만, 그 비유와 해석을 찾아낼때의 희열이 뚜렷한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들었던 궁금증은 3가지였는데, 그 중 2가지는 나만의 답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희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첫 번째는 앵무새였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앵무새를 구하러 가면서 시작된다. 도대체 그 조그만 새가 뭐길래 인선은 경해와 뜸해진 연락에도, 무례한 부탁임에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살려달라 애원했을까. 그게 나타내는 의미가 뭘까.
내가 찾은 단서는 먼저 새가 2마리였다는 것이다. 굳이 먼저 한 마리가 죽은 설정을 넣은것. 그리고 새가 아주 연약하다는 묘사를 책에서 꾸준해 했다는 것. 새는 연기 한 줄기에도 생명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새의 몸에는 구멍투성이라고. 그런 묘사로 새가 꼭 돌봐주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
엄마와의 대화 끝에 답을 우리만의 해석을 완성했는데, 새는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먼저 돌아가신 인선의 어머니와, 결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처럼 묘사되는 인선. 그리고 4.3 사건 이후 남겨진 연약한 피해자들. 새와 딱 들어맞는 지점이었다.
나중에 소년이 온다를 읽고 알게된 사실인데, 한강 작가는 새가 난다는 것, 그리고 가볍다는 것이 영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꿈이었다. 새까만 검정색의 사람 몸만큼 큰 나무가 빽뺵한 숲에는 무덤들이 있고, 머리 위에서는 눈이 오며 발 밑으로는 바다가 들락거리는 꿈. 그 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묘사된 부분을 참고하면서 검정색 나무의 정체를 알게되었는데, 인선은 목재 작업을 하다가 피가 나서 실려가게 되고 나중에 경해가 그 현장에 간다. 그 곳에 있던 나무는 경해의 피때문에 물이 들어있었는데 그 자리 위에 눈이 오니 나무가 검게 변해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 꿈에서 나온 빽빽한 나무는 모두 4.3사건에서 피를 흘리고 희생된 사람들이었고, 그 위에 눈이 내려 나무가 검게 변한 것이다.
군인들은 제주도 사람들을 해안가에 한 줄로 세워놓고 순서대로 총을 쐈다. 그 뒤에 죽은 사람들은 바다에 쓸려 내려갔고 핏자국 하나 없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곳은 흔적이 사라졌다. 발밑에서 밀려오던 밀물은 사람들이 힘없이 휩쓸려 가던 그 밀물에 대한 표현이었다.
세 번째는 경해의 시선이었다. 이 책은 사실 3사람의 이야기가 시간이 바뀌며 계속 반복되어 읽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이야기의 구성을 경해를 빼고 했으면 더 읽기 쉬운 소설이 되었을텐데 왜 꼭 경해의 시선을 넣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에 내린 답은 ’경해‘는 한강 작가 본인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책 초반에는 이미 한 차례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가 굉장한 감정의 늪에 빠져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책의 이름은 ’작별‘로 한강 작가가 단편소설로 썼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아, 경해가 한강 본인이구나‘ 라고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에서 본 사건을 풀어내기 위해 경해를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영상을 보면서 한강 작가 본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이유였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었지만 ‘제3자의 시선과 감정, 역할’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그런 의도였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피해자와 유족에게만 가슴아프고 의미가 있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제3자라도 이 사건을 기억하고, 함께 가슴아파하고, 추모해야한다는 것.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의 의도는 역시 내가 완벽하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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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쓰다보니 글이 정말 길어졌다.
요즘 머릿속에 온통 이 작품이었어서 그런가보다.
한강 작가의 책은 책마다 문체가 달라서 너무 신기하고 또 새롭다.
한강 작가의 많은 작품 중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봐야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이 책을 구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기다려서라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 그리고 중요한 얘기를 하느라 까먹었는데, 눈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묘사가 너무 색다르고 몽환적이라 그것도 추천의 한가지 이유이다.
이제 진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