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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쌤 Nov 17. 2024

완전한 행복 (정유정)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이 책의 제목을 본 뒤 나에게 완전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했다.

나에게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행복이라는 것은 완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상은 언제나 불안과 불행, 기쁨과 행복이 함께 존재한다. 그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은 완전하게 존재한다기보다는, 다른 것과 어우러져 존재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표현한다면 아마 곱셈일 것이다. 발견할수록 배로 행복해지는.


이 책의 주인공은 행복을 뺄셈이라고 표현한다. 불행의 요소들을 차근차근 없애 결국에는 완전하게 행복해지는 것.

어떻게 보면 좋은 말 같지만, 무서운 말이기도 했다. 일상에서 불행의 요소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란 불가능한데. 그럼 완전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네.

아니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든지. 둘 중 무엇이라도 좋게 들리진 않는다.


이 책은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자세한 줄거리는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포가 될 수 있기에!)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나에게는 그래서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지루하다 느끼지 않았고 순식간에 읽었다. 상황의 퍼즐을 조각조각 끼워 맞추며 그림의 윤곽이 드러날 때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 자세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었으며, 적절할 때 화자를 변경하여 뻔한 이야기도 뻔하지 않게 긴장감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또 이 책의 의미는 나르시시스트를 잘 표현했다는 데에서 오는 것 같다.

주인공은 한 번도 화자로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인물들의 시선이 더해져 주인공을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시선과 어떤 마음으로 주인공을 보게 되는지 보다 보면 주변에서 비슷한 인물이 없었나 찾게 되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을 주위로 돌아간다고 믿고, 자신을 배신하면 꼭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자신의 모든 통제 속에 사람들을 가둬놓으려고 하는 사람.


*

유나에게 인간은 딱 세 종류였다. 승자, 패자, 모르는 자.

상대에 따라 대응 방식도 달랐다. 승자에겐 입 안의 혀처럼 굴고, 패자에겐 송곳니로 군림했다. 모르는 자는 입냄새쯤으로 취급했다. 유나에게 그녀는 패자 부류였다. 패자에겐 설명하지 않는 게 '유나의 법칙'이었다.

*


책을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주인공 유나의 딸인 지유가 화자가 되었을 때이다. 부모는 한 아이의 온 우주이다. 사실 어릴 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온 우주를 흔들 때도 많다.

그런데 책 속에서 지유는 두 우주 중 한 우주를 잃었을 뿐 아니라, 다른 한 우주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서워해야 했다. 지유에게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의 심리가 묘사된 페이지를 볼 때면 내가 지유가 된 것처럼 마음 졸이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

조금 지나자 엄마가 밤늦도록 오지 말았으면 했다. 잠들어있으면 그냥 지나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다 보면 엄마가 벌주는 걸 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라는 걸, 지유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받게 될 벌이었다.

*

지금 복도를 걸어오는 저 조심스러운 발소리는 단순히 어린 조카가 이모를 도우러 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 아이가 제 신의 계명을 어기고 오는 발소리였다.

*


사실 요즘 딱 마음에 들고 꽂힌 책이 없어 병렬독서 중이었는데, 이 책은 2일 만에 다 읽어버렸다.

500페이지를 단숨에 끝내버리게 하는 힘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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