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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중현 Nov 30. 2022

사람의 뒷모습 사진을 찍는 이유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감동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 것은 찍는 사람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국제벼연구소 들판에 앉은 해남땅끝황토친환경영농법인 윤영식대표와 육종학을 공부하는 Ian Paul Navea. (세종대 박현승 교수 제공)
필리핀 Laguna주 Calauan의 농민, 그리고 농학자, 그리고 사위인 생물정보학자 Ramil Mauleon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무언가를 보는 사람의 뒤에서, 그들을 모르게 그들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마 담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모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사진은 그들의 뒤를 찍는 것이다!


윤영식 대표는 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교수 님을 만나서, 쌀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말씀을 하시니, 이제는 사양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 윤 대표님이 진정 쌀을 사랑하시는 애국자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가장 많은 쌀을 수출하고 계시며, 그 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다. 벼와 쌀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또 하나의 영웅을 찍었다. 


필리핀의 농민, 그 옆을 함께 걷는 농학자, 그 옆을 걷는 생명정보학자다. 농민은 비록 자신의 생업을 위하여 쌀을 생산한다고 믿겠지만, 풍요롭게 생산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 자신의 어려운 삶을 견디는 힘이 있다. 그 마음을 아는 똑똑한 자는 공부한다. 


파스칼이 계산기를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든 이유가, 장사를 하는 아버지가 계산을 힘들어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농민을 위해 고민하는 농학자는 늘 생산성을 위해 높이는 방법을 고민한다. 평생은 연구하던 농학자가 은퇴하여, 자신이 가진 작은 돈을 농민을 위해 투자한다. 


농학자는 사위로 국제벼연구소에서 생물정보학자를 사위로 두었다. 생물정보학자는 학생 때에는 벼와 쌀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벼와 쌀을 공부하는 이들을 돕는 생물정보학자가 되었다. 자신이 속한 땅에 대한 애정이 싹텄다. 자기가 가진 재주로 3000개 벼 품종 시퀀싱 프로젝트 완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나는 그 생물정보학자와 5m도 안 되는 거리에 사무실을 두었었다. 그렇게 지척인 공간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비록 벼의 유전학과 육종학을 공부한 나는 생물정보학자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거리는 미소와 친근감으로 극복했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 봤다. 나의 공부는 도대체 어디에 안착할 것인가. 2000년 세계벼유전학회 당시에 방문했던 IRRI가 떠올랐다. 각 사무실에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던 공간에 당시 세계 최고의 벼 유전학자였던 Susan McCouch, Rod Wing, Darshan Brar, David MacKill, Hei Leung, Jan Leach, Guoliang Wang, Takuchi Sasaki, Masahiro Yano, 그리고 이름도 다 기억이 안 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감동에 압도되었었다. 그것이 나의 운명적 순간이었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만, 그것은 달력 때문에 그리 믿는다. 그러나, 아날로그시계는 시간이 돌고 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억은 시간을 초월하는 도구다. 추억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공통점들이 타임머신을 경험하게 한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뒷모습에서 내 추억이 아우라처럼 피어오른다. 


다시 윗 사진을 보니, 공통적인 모습이 되었다. 왼쪽의 농민 옆에 내가 있어야 했다. 그 오른쪽에 미래 육종학자인 이안이 앉아 있다. 두 사진은 이렇게 묘한 공통점을 갖는다. 현재와 과거, 한국과 필리핀, 그 두 시공간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을 때 감동을 느낀다. 나는 우리 세상과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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