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여섯 시, 일기를 씁니다

내가 답장해 줄게.

by 박선희

십 년 정도,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쓰게 된 이유는 어쩌면 별것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초조나 서글픔에 시달린 시간들이 있을 텐데 나 역시 그런 순간을 겪었고 십 년 전 그때가 그랬다. 나라는 사람은 없고 내가 해야 할 일과 나의 역할만 남은 것 같았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박선희는 어디로 갔지? 이대로 영영 박선희 없이 박선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캄캄했다. 그 감정에 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침 여섯 시라는 시간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온전히 나에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새벽의 몇 시간뿐이었다.


운 좋게 그 무렵 만났던 친구와의 약속이 첫발을 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의 내 고민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뭘 하고 싶은데?

글을 쓰고 싶은 것 같아.

그럼 써 봐.

못 써.

그냥 써. 아무거나. 내가 답장해 줄게.

답장해 준다는 그 말이 망설이던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답장을 해 준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아직 쓰이지도 않은 나의 이야기를 읽고 돌아올 말을 먼저 상상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겨울이었고 밖은 아직 어두웠다. 라디오를 낮게 틀어놓고 나는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했다. 나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무엇에 대해 써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어떤 면이 있다면 그건 언제 만들어진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정적인 순간. 그날의 일기 제목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고, 말을 고르고,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일기를 완성했다. 마침표를 찍고 다시 한번 읽으며 나는 오랜만에 나를 확인했다.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십 년, 나는 여섯 시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친구의 답장은 물론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나에게 나의 생활이 있듯 친구에게는 친구의 생활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십 년 전 그 겨울, 캄캄한 마루에 앉아 무얼 쓸까 고민하던 그때가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 두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 그 순간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간절하고 자유로웠던 그 한두 시간이 열 시간, 스무 시간, 삼백 시간이 되었고 어느새 삼천육백오십 시간을 넘었다. 어떤 계절의 여섯 시는 햇볕과 기온이 알맞아 문을 열어두기만 해도 벅찼다. 어떤 계절의 여섯 시에는 해가 먼저 일어나 나를 반겨주었고, 어떤 계절의 여섯 시는 너무 어두워 일어나기 전에 몇 번이나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일어나지 못한 날들은 있었지만 일어나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기를 쓰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봤던 것 중에 잊히지 않고 남은 것에 대해 썼다. 내가 겪었던 일 중에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썼다. 그때마다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썼다. 나에게 집중해서 나를 알아가며 나는 점점 명료해졌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떻게 행동했을 때 만족하고 어떤 일에 괴로워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가급적 나에게 좋은 일을 해 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찬찬히 세계를 관찰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세계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삶이란 무척 빛나고 버겁고 소중하다는 아름답고 서늘한 세계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지탱해 주는 커다란 지지대가 되었다.


내 안을 열심히 바라보며 매일 일기를 썼을 뿐인데 그 시간들이 쌓여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다. 무엇으로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당신에게, 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당신에게 눈을 맞추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써요, 그게 뭐든. 내가 답장해 줄게요.

답장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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