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킥보드 그리고 기억
일상이 많이 무너졌다. 지독한 그 질병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의 일상을 무너뜨렸고, 무너뜨린 일상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었다. 나 역시 바뀐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정해진 요일이 되면 약국으로 향하는 게 익숙하다.
이번 주는 급하게 생긴 약속으로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일요일에 연 약국을 찾아야 했다. 집에서 어플로 확인하고 목적지로 나섰다. 집과 회사만 다니는 단조로운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는 걸 미처 몰랐다. 출퇴근 시간의 날씨만 생각하고 입고 나온 리넨 셔츠가 답답하였다. 조금 걷다 보니 셔츠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사람들의 삶과 상관없이 무던히 변하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목적한 약국까지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걸어갔다. 그런데 웬걸 그 약국은 문이 닫혀있었다. 어플로 다시 확인해봐도 살 수 있다고 되어있었지만 실제로 간 그 약국은 문이 닫혀있었다. 오늘은 날씨를 온몸으로 받아보라는 의미인가 보다 하고 차키가 있는 집으로 다시 향했다.
다시 걸어오는 길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물건이 눈에 띄었다. 버려진 물건이거니 했다. 그러기엔 너무 좋아 보여 바쁜 주인이 잠시 놓아준 물건이거니 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공유 킥보드였다. 약국을 가는 길에는 보이지 않아서 그사이에 놔두고 갔나 보다. 매체를 통해 접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정말 길 가장자리에 달랑 킥보드만 있었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고리타분한 내 생각으로는 어떻게 킥보드가 분실되지도 않고 운영이 될까 싶었다. 이용자의 책임감과 도덕이 나의 고리타분한 생각보다 더 깊고 넓은 것 같다.
그 자리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이 공유 킥보드가 얼마 전부터 정왕동에 들어와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출퇴근을 차로 하고 밤에나 산책하러 나가기 때문인지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공유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상상해보았다.
그 사람들은 왜 탈까?
장을 보러? 출퇴근하기 위하여? 친구들과 놀러?
어떤 이유든 공유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스페인이 떠올랐다.
몇 해 전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간다고 하여 급하게 따라나선 스페인 여행이었다. 3주 정도 오랜 기간이었고 여러 도시를 다녀왔지만, 딱 떠오르는 건 세비야 자전거이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나절 돌아다녔다. 세비야에서만 3박 4일을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곳들을 가고, 보고, 듣고 했지만 자전거만 떠오르는 건 이상하다. 더욱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자전거를 타고 보았던 풍경 아니라 타면서 느꼈던 감각이다.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던 상쾌한 세비야 바람, 귀를 간지럽히듯이 조근조근 들렸던 사람들의 목소리, 코끝을 살짝 스치던 이국적인 냄새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아마 내가 이성보다는 감각에 더 치우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 감각들은 긍정적으로 중첩되어 나는 세비야를 안락하고 편안한 도시로 기억한다.
정왕동에서 공유 킥보드를 타는 사람은 어떤 감각으로 정왕동을 느끼고 있을까?
또 어떻게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