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생각
나는 시흥시 정왕동에 산다.
2010년에 직장으로 처음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벌써 10년째이다. 중간에 나라에 부름을 받긴 했지만, 금방 다시 돌아올 곳으로 생각하며 지냈기 때문에 감히 10년을 가득 채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뻔히 하는 관용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나는 시흥에 있으면서 눈으로 확인하였다. 처음 왔을 때 정왕동의 서쪽 끝은 모래사장, 해수욕장, 둔덕 이 세 가지 중 뭐라고 하기에 모호한 구역이 있었다. 거기로 가는 길도 없어 정왕동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거나 차를 타고 휙 스쳐 보는 것이 다였다. 아무것도 없고 갈 수도 없었고 특별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2013년 나라에 대한 의무를 끝마치고 다시 시흥으로 왔다. 돌아와 보니 별거 없던 그곳이 배곧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곳에 많은 아파트가 들어설 거라는 얘기가 들렸다. 실제로 길 곳곳에 아파트니 상가니 분양 안내판이 걸려있었고 마트 입구에서 휴지나 안내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때 받았던 종이가방이 얼마나 튼튼한지 얼마 전까지도 내 팔레트가 담겨있었다.
곳곳에서 내 집 마련을 하라고 청사진을 보이며 나를 꾀었지만 내 집 마련은 그때나 지금이나 먼 얘기 같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넘겼고, 다만 나는 왜 그곳의 이름이 배곶이 아닌 배곧이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약 7여 년이 흐른 2020년 지금의 배곧은 그때 그 모습을 거의 지웠다. 여느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었고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모이게 되었다. 정왕동의 돈과 사람의 흐름까지 바꾸었다. 나 역시 요즘은 회식하거나 약속을 잡을 때 으레 장소를 배곧으로 잡는다.
시흥은 산업도시에서 생태 도시로 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배곧 역시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바다도 가까이 볼 수 있고 언덕과 평지와 갈대 등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그래서 나도 배곧 생명 공원에서 산책을 자주 한다.
배곧으로 가는 산책길은 눈이 심심하지 않다. 사람이 많고 건물은 높고 조명은 밝다. 다양한 가게가 있어 업종을 알아보는 것도 다채롭고 재미있다.
그런데 화려한 메인 골목을 조금 비켜나면 다른 풍경이 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상가가 있는데 다른 느낌을 준다. 메인 건물은 모든 층에 불이 켜져 있고 창 안으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 상가는 가게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여 텅하니 비어 있다. 창문에 ‘임대문의’ 스티커만 붙어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신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모든 곳에 적용되고 모든 곳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 뒤편 건물은 어찌어찌 가게가 들어왔지만 금세 바뀌곤 한다. 신도시라 세가 비싸서 쉽게 못 버틴다는 얘기도 들었다. 사람들이 모이지만 배곧 전체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몇 군데에 집중이 되는 것이다. 부와 인적과 관심의 편중이 이 공간에서도 생긴다고 하니 씁쓸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는 다른 정왕동 곳곳이 떠오른다.
배곧은 원래 한국화약 주식회사에서 자사 제품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장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매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회사 사정상 시흥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도시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벌의 특혜에 맞서 그 이익을 시민에게 골고루 나눠주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노력했고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배곧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은 그러한 역사를 알까?
또한, 배곧에서 발생하는 많은 편리와 이익은 그때 그 사람들이 노력했던 만큼 많은 사람에게 잘 돌아가고 있는 건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산책이다.
대학 시절 잠깐 했던 연극 동아리 공연 목록에서 보았던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이 보인다.’라는 제목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