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ST STORY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욱 Jan 21. 2020

손톱 깎아드려요. 비용은?

값은 옛날~ 옛날에~

일요일에 나는 손, 발톱을 깎는다. 내 것은 아니다. 수십 명의 손, 발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일요일은 손톱 깎아드리는 날인데, 내가 일하는 요양원에서는 일요일에 프로그램이나 목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에 비해 어르신들과 한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일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시작된다.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하기 위해 거실에 모인 어르신들이 일차 목표가 된다. 이 분들은 치매 진행이 초기 단계이고 특히 몇 분은 무릎 수술로 거동이 불편할 뿐 치매를 앓고 있지 않는데 이런 분들은 제대로  손, 발톱 정리 비용을 치러주신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비용을 낼 수 없는 형편이고 매번 일요일에 근무가 잡히는 것도 아니라서 일요일 오후에 손톱 깎는 일을 나는 무척 기다리는 편이다. 비용은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받는다. 나는 이 값을 꽤 좋아한다.


요양원 거실에 모인 노인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이 많은 노인이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을 본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노인은 활기차 보이는데 텔레비전 밖의 노인들은 힘 빠진 모습이다. 송해 선생님은 노인들을 주눅 들게 한다. 적어도 이곳, 요양원 거실에 모인 노인들에게 그는 넘사벽이다.


휠체어에 꽉 낀 엉덩이를 어렵사리 빼낸 할머니는 몸을 소파에 던지듯이 떨어뜨린 후 용수철 위에 달린 인형 머리처럼 몇 번 출렁거렸다. 평소 흡입기를 사용하는 분이다. 쉭쉭 숨소리가 목울대를 넘어왔다. 그러고는 몸이 안정적으로 멈추기도 전에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네일숍에서 손을 내밀듯이.


희고 가느다란, 선비 손 같다는 평을 듣는 내 손에 잡힌 할머니의 손은, 풍문으로만 들었던 정말 솥뚜껑 같은 손이었다. 손의 두께와 손바닥의 딱딱함은 여느 할머니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농부 할아버지의 손 같은 할머니의 손끝에 달린 손톱을 깎기 시작할 때였다.

- 옛날에는 손톱 깎을 일이 없었는데.....

(앗, 드디어 옛날 옛날에~)

사실 나는 이 옛날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데, 할머니는 처음처럼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처음처럼 들었다.(간접광고 아님)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요양원에서 나의  일상이다. 알아도 모른 척.

- 엥, 왜요?

(어떤 상황이든지 적당한 리액션은 대화를 지속시키는 필수 아이템이다)



할머니가 여섯 아이들의 엄마였을 때였다. 아이들 밥은 굶기지 말아야겠다고 부부는 다짐했다. 대부분 할머니의 다짐은 지켜졌는데 쌀 밥은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고 아침, 점심은 보리밥, 저녁은 국수가 주 메뉴였다.

문제는 보리가 지금처럼 깨끗하게 도정된 것이 아니라 껍질을 벗기지 않은 날보리였다는 거였다. 보리의 껍질은 무척 단단하다. 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보리를 찧을 때 방아를 사용했다. 소나 말을 이용하는 연자방아나 물의 힘을 이용하는 물레방아가 있긴 했지만 할머니 집에서는 그때그때 먹을 양만 찧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사람이 발로 밟는 디딜방아를 이용했다.

보리를 방아에 넣고 찧기만 하면 될 것처럼 간단해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보리 껍질을 벗길 수 없었다.

보리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리를 찧기 전에 반드시 물에 불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보리 찧기는 보리를 먼저 물에 불리고 방아를 이용해 찧고 찧은 보리를 잘 말린 다음 키질을 해서 껍질을 날리는 것인데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 할머니는 젖은 보리를 맨손으로 치댔다고 한다. 흰 죽을 끓일 때 손으로 쌀을 박박 문지르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될까. 더군다나 한 번의 찧기로는 보리 껍질을 모두 없앨 수가 없었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해야 보리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니. 고무장갑 따위가 있을 리 없었던 시절에 할머니의 맨손은 열일을 해야 했을 테고 손톱은 닳기 바빠서 손톱 깎을 일은 당연히 없었던 거였다. 저절로 깎인 셈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질문 하나를 던진다. 아직 할머니는 손톱 깎는 비용을 덜 치렀다.

- 그때는 쌀밥이 그리 귀했다죠?

할머니의 눈동자가 아래를 향한다. 먼 기억을 떠올릴 때 보이는 모습이다.

- 아주 없지는 않았지. 죽어라 일했으니까. 끼니때마다는 아니지만 가끔 한 그릇 정도는 먹을 수 있었지. 한 공기는......


껍질을 벗긴 보리를 솥에 넣은 할머니는 솥 가운데 보리를 한 움큼 집어 공간을 만든 다음 그곳에 흰 쌀을 채워 넣었다. 쌀밥 한 그릇 정도의 양이었다. 남편의 몫이었다. 나는 보리 중간에 박힌 한 공기의 쌀과 밥을 짓는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했는데 그 심정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굴비를 천정에 매달아놓고 밥을 먹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아이들은 아버지가 드시는 흰쌀밥을 반찬삼아 보리밥을 먹었을 것 같았다.

여섯 아이들의 눈빛이 머무는 한 그릇 쌀밥을 아이들의 아비가 편하게 먹을 수 있었을까. 그는 반도 먹지 않고 헛기침을 하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마저 드시라는 아내의 걱정을 못 들은 체하며  아버지가 방을 나서면 여섯 아이들이 달려들어 한 수저씩 흰쌀밥을 먹었다는데 나는 그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익히 들었던 꿀맛 같았을까.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끝날 때쯤 손톱 정리를 마쳤다. 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꼬리가 그믐달처럼 휘어졌다.

다행히 손님의 얼굴은 만족한 표정이다. 이번 손님은 비용도 후하게 치러 주셨다. 

다음 손님은 또 어떤 옛날~ 옛날에~를 들려줄까. 벌써부터  떨리는 마음이다. 앗, 그런데 다들 전국 노래자랑에 푹 빠져있다.

손님들을 모으기 위해 외쳐나 볼까.

손톱 깎아드려요. 비용은?

값은 옛날~ 옛날에~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가 너무 지겹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