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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호감 정치, 그 너머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김민하 (이데아, 2022)

by 엄마오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25년 2월 중순인 현재 탄핵 변론은 실질적인 마무리 수순으로 가고 있으며 조만간 최종심판을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탄핵을 기정사실화하며 조기 대선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인물들이 대선 주자로 어울릴지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지난 대선의 ‘역대 최고 비호감 선거’를 소환하며 이번 선거 또한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이는 가장 최근인 25년 2월 2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이재명을 비롯한 여러 후보들(김동연, 이준석, 김문수, 오세훈, 홍준표, 한동훈)에 대한 결과 모두 ‘지지 의향이 없’거나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는 사실로 설득력을 가진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쪽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쪽만은 정말 아니겠기에, 어쩔 수 없이 투표하며 한숨짓는, 지금의 한국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내세운 김민하 정치평론가의 책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2022, 이데아)는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다층적으로 표현한다. 20대 대선 직전에 발표되었지만 지금의 정치 현실에도 낯설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에서 일했던 작가는 현재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정치, 사회 평론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책은 온갖 정치적 사건에도 우리 눈앞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탐색하며 ‘반대’를 통해 ‘우리편’을 만들어내는 정치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친다.


2019년 ‘조국사태’를 통해 진보적 가치와 기득권으로서의 보수를 논하는 저자는 ‘대의명분의 서사로 손익관계를 감추’고 ‘나’의 사익 추구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예멘 난민에 대한 우리사회의 반응과 암호화폐 논란을 통해 지적한다. 무조건적 지지를 업은 ‘팬덤 정치’와 정치적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정치 기술자’의 ‘목표’ 없음이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문제의 핵심이라 꼬집고, 미국과 일본의 정치 역사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게만 한정된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양당제적 구도의 결과물이라고 논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저자가 논하는 현실 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훑다보면 막연했던 정치적 ‘혐오’와 ‘비호감’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가 잡힌다.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각 개인의 이해관계로 치환하고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대의‘를 동원하는 정치적 구호의 형성’(p.66)을 ‘이권의 대의명분화’ 현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이 결국 자신의 이익을 훼손하는 존재에 대한 ‘반대’로서의 정치활동임을 폭로하는 대목은 손익관계로 귀결되는 정치적 논쟁이 결국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의 민낯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정권이 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하며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이유를 조목조목 따진다. 이는 한국정치만 유별나서 이런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정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저자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기득권에 반대하는 양당제적 구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좌와 우의 진자운동의 축이 어떻게 계속 우측으로 쏠려갔는지 조목조목 보여준다. “통치 구조 안에서 보면 세상은 힘들 만해서 힘든 것이다.”(p.244) 책 발행 이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패배했다.


“우리 정치의 문제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상식과 합리’를 회복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것은 ‘반대의 정치’라는 맥락을 간과한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상식과 합리’는 언제든지 ‘극단주의’로 실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근본적 해답일 수 없다.”(p.247) 2022년에 발간된 책이지만 지금의 정치 사회 상황을 짐작하는 듯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비호감의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저자는 브라질의 한 지방도시에서 실행된 참여민주주의에서 가능성을 찾아본다. 독재 정권 시대를 거쳐 등장한 새로운 지방정부는 시민들을 지방의 예산 정책에 참여시키는 동시에 책임 또한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치의 초점을(중략) 사회구조의 소유를 바꾸는 일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이 실제로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어 공동체를 경영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p.254) 어쩌면 너무나 이상적인 해법이라 현실화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복되는 ‘반대’의 정치적 순환고리를 끊으려면 시민 각자의 고민과 성찰 또한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실패를 딛고 더 나은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시도가 ‘퇴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의 정치’로는 이러한 퇴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젠 ‘어떤 민주주주의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호감 선거에 질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었던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현실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와 대안에 대해 고민해보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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