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김성우·엄기호 (2020, 따비)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한’을 ‘지루하다’는 의미로 오해하거나 ‘추후 공고’를 ‘추후 공업고등학교’로, ‘중식 제공’을 ‘중국음식’으로 잘 못 이해하는 사례들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최근에는 SNS와 영상매체의 사용이 폭증하며 ‘디지털 문해력’,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 또한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의 빠른 성장은 종이책 발행부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량은 점점 줄고 있고 10명 가운데 6명정도는 1년동안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2023 문화체육관광부 국민 독서실태 조사). 대담집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김성우·엄기호 공저, 2020, 따비)는 이러한 위기의식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제목의 책이다.
‘삶이 말에 스며드는 방식’에 천착해온 문화 연구자 엄기호는 ‘말이 삶을 빚어내는 모습’을 탐색해 온 응용언어학자 김성우에게 손을 내밀어 (p.12)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치고 있는 리터러시의 문제를 논의한다. 책은 ‘리터러시’의 정의와 역사적 맥락으로 시작해 읽기와 쓰기, 미디어와 몸, 사회적 역량으로서의 리터러시,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 등에 관한 공저자들의 대담형식이다. 단순히 문자에 대한 독해력을 넘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갖추고 배워야 할 능력으로서의 리터러시를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문자는 결국 소통을 위한 도구이고, 소통은 타인/독자가 존재해야 그 의미를 획득한다. 저자들은 관계가 거세된 상태에서의 문해력 만이 지금의 우리가 획득하려하는 기술이라고 밝히며 ‘현재의 맥락에서 텍스트를 공유하고 있는 나와 너’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김성우는 문해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자신과의 일화를 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읽는 이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글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텍스트를 대상으로만 생각할 뿐 지금 나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p.48)로 여기지 않는다면 문해력의 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리터러시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느냐 영상을 봐도 되느냐가 아닙니다. 그 무엇을 하든, 이것들을 통해서 타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죠.”(p.173) 저자들은 인터넷 안에서 자신과 생각이 같은 무리들에 매몰되어 새로운 배움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자세는 반지성주의와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확증편향은 이러한 ‘안다는 착각’의 결과물인 셈이다. 엄기호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리터러시의 지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나타한다고 말하며 “윤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p.181)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깊이’ 때문에 타인, 나아가 삶의 복합성과 입체성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각과 언어를 길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가 대상으로서의 문해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교육현장의 딜레마는 공정성과 실행 가능성의 덫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지점에 있다. 저자들은 공정성보다는 공공성에 초점을 맞춰 리터러시의 사회적 역량을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탐구와 연구의 통로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독서토론 등을 통해 배움의 문화를 바꾸어 나아가는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독서동아리를 통해 학교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나눈 홍천여고의 사례는 이러한 상호교류적 공동체의 리터러시와 좋은 삶을 향한 실천이다.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p.277)
언어학자와 사회학자의 닮은 듯 다른 관점은 리터러시에 대한 깊이있는 비전을 제공한다. 언어교육과 글쓰기, 교육에 천착한 김성우와 사회와 문화, 인권문제를 탐구해 온 엄기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담과 어렵지 않은 어휘를 통해 문해력 문제의 방향을 제시한다. 독자는 어느새 문해력이란 단순한 문장 독해 능력을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핵심적 역량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리터러시’라는 방대한 주제를 대화 형식으로 다루느라 산만한 느낌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조차도 관계 속에서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가는 ‘문해력’의 좋은 예로 읽힐 수 있을듯하다. 다룬 방대한 주제에 비해 책의 제목은 오히려 왜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유튜브로 세상을 보는 지금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과 그들의 ‘문해력’을 걱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