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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배울 수 있는 건 쉽게 배워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내 또래가 된 회사 상사들에게

by 돈냥이



어렵게 배워야 기억에 잘 남는다지만


같은 업무를 하던 직속 상사가 퇴사하고, 인원 충원이 되지 않아 오롯이 그 업무를 담당하게 된 사원이 있었다. 어느 날, 무언가 애매한 사항이 있어 팀장에게 질문을 했는데 담당 회계사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 내가 경험이 있는 질문이어서 답을 해주었는데 팀장은 그 사원에게 회계사무소에 직접 전화해서 답을 들을 것을 고집하였다. 하필 회계사무소에서는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기다리기도 하며 30분 만에 알아낸 답은 내가 알려준 것과 동일했다.


나중에 팀장에게 온 메시지는,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힘들게 얻어야만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말이었다. 회사에서 팀장이 팀원을 운영하는 방법이 그러하고 나 또한 어렵게 배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데에는 공감하기 때문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동안 그렇게 직접 부딪혀가며 어렵게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잖게 만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꼭 그렇게 어렵게 얻어야 하는 것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 사원은 그 외에도 많은 의문과 싸워야 했고, 직속 상사가 없어 대부분 어렵게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어려움과 싸워가며 일하는 직원에게 쉽게 줄 수 있는 답은 그냥 쉽게 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회사에서 선배와 상사의 역할


상사가 부하직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이유는 책임에 있다고 익히 알려져 있다. 하급 직원이 하는 업무 대부분 선임 직원도 할 수 있지만 모든 업무를 할 수는 없기에 업무를 내려주고 그것을 확인하는 정도만 하거나, 확실하게 처리했음을 믿고 다른 업무들과 통합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작은 업무를 지우고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상사와 선배라면, "업무를 지우는 방식" 또한 그들의 책임이다. 어떤 업무인지, 그 업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어 매번 일일이 묻지 않고 혼자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후임의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이전에 해야 하는 "후임에 대한 책임"이다.


처음 회사에 들어온 신입의 첫 연봉은 교육 비용에 가깝다. 최소 연봉의 세배 이상의 수익을 회사에 가져다주어야 밥값을 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처음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연봉만큼의 이익이라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최대한 빨리 업무에 숙달시키는 것이 회사 이익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에 내가 고생하며 얻은 노하우라 할지라도 시간을 들여 배울 필요가 없다면 바로 요령을 알려주는 편이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어디서 어떻게 자료를 찾고 규칙을 확인해야 되는지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낸 방법을, 후임에게는 이것은 여기서 찾으면 되고 막힐 때는 저기 전화해서 물어보면 된다는 요령 정도는 그냥 알려준다.


내가 0에서 시작해 10까지 다다르기까지 열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면, 내 후임은 시작부터 10에서 시작해야 교육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내가 들인 교육의 시간을 후임이 다시 들이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낭비일 뿐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잊힌다지만 회사 업무는 대부분 반복이기 때문에 그리 쉬이 잊히지 않을뿐더러, 어렵게 익혀 쉬이 잊지 않고 있는 선배가 그래서 있는 것이고, 잊히지 않게 매뉴얼화하는 것도 선배의 책임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지식을 효율적으로 아래 세대에 남겨서 회사의 비용을 아끼는 것이 신입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신입이 언제까지 입만 벌려서 주는 먹이만 받아먹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회사일은 유동적이고 계속 변한다. 내가 데려다 놓은 10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힘으로 11, 12... 내가 가지 않았던 길에 들어서면서 업무를 확장해나가고 스스로 부딪혀가며 어렵게 배우고 요령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가 이미 갔던 1에서 10까지를 어렵게 달리게 하면 내가 온 곳까지 달리느라 힘을 빼고 업무가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내가 도착한 곳에서 출발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원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에서 나에게 주는, 신입보다 더 많은 월급값을 하기 위해 내가 왔던 길 정도는 쉽게 오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게 과장 이상의 월급을 받으면 해야 되는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처리방식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바뀌게 된다. 요즘은 특히 속도가 더 빨라져 반년 뒤에 들어온 후임이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정도다. 이런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업무에 적응을 시키려면 지금 당장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업무 처리 요령은 그냥 알려주어야 한다. 어차피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거나 업무 처리 방식이 도입되면 직접 부딪히면서 알아내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끝으로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지식과 요령은 대체로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신입사원이 바닥에서 고군분투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와 방법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걸 뭔가 엄청난 게 있는 것 마냥 떠먹여 주지 않으려 하고, 나중에 회식에서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 너 생각해서 그런 거야"라고 하면 그 사람의 업무 수준만 공개되는 꼴이니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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