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New
(어쩌다 보니) 작년 한 해는 챗바퀴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도 눈뜨면 돌아오는 할 일, 할 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하루가 금방 저무는 식이었다. 의욕이 샘솟아 ‘할 일을 아주 많이’ 하려던 날에도 소름 끼칠 만큼 똑같은 하루가 흘러가서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런 나에게 밝아온 2025년이 반가웠을 리가. ‘하루만 더 늦게 와줘!’를 외쳐봤자,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계를 보며, 새 다이어리를 펼치고, 습관적으로 한해를 회고하고, 계획을 세우는 나 자신에게 ‘영혼 없어, 너…’라고 혼잣말을 하는 새해의 날들에 내 영혼을 갉아먹는 새로운 것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너도나도 챗GPT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2, 3년 전쯤이었다. A.I. 툴로 회사 업무 일부를 처리한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듣기 시작한 게 1년 전이었고, 스멀스멀 새로 생긴 A.I. 전문 강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A.I. 툴로 실사에 버금가는 이미지와 영상과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A.I.툴로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에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나만의 챗봇을 만들고, 나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보며 ‘아차’ 싶었다. 그렇게 소중하다고 여기던 ‘시간’ 싸움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익숙하지 않다고 미뤄두었던 걸 실행하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부터였다.
단순히 ‘신세계’라고 하기에 깨우쳐야 할 영역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에 ‘미지의 세계’라고 해두자. 일일이 조사하고, 계획하고, 프리젠테이션을 만들거나, 사진을 찾거나, 찾은 사진을 보정하거나 하는 일을 도와 줄 나만의 비서가 생긴 기분이었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디자인하고, ‘보기 좋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전문가 영역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너도나도 인플루언서 시대'에서 '너도나도 전문가 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질문을 잘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연관된 꼬리 질문까지 알아서 해주니, 도통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그렇다.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도 없이 망설이고, 거부하고, 외면했다. 결국 받아들인 후에야 ‘새로운 것(습관)을 받아들이는 게 참 쉽지 않구나.’ 하는 것이다. ‘이걸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는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럼에도 시작하길 잘했다는 자위와 함께. 그렇다면 해피엔딩일까? 글쎄.
새것을 받아들이면서 오래된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분명 시간을 벌고 있는데, 이상하게 시간은 멀어져가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끔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손 글씨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같은 장면을 되돌려 보는 일 같은 거 말이다.
마침 읽은 책에서 이런 글귀를 만났다.
『서정 담시Lyrical Ballads』 서문에서 워즈 워스는 시인의 역할을 "인간에게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것"이며 이러한 과업은 "우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수전 손택의 말> 중에서
인간에게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시인의 역할은 언제까지 존재할까. 사람은, 사람이 쓴 시와 인공지능이 쓴 시를 구분하여 감동할까? 영화 속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코앞으로 다가오는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읽고 쓰는 일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