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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Oct 18. 2019

여행 기념품 좋아하세요?

결국은 사람



9월의 트빌리시는 완벽했다. 초가을 따스한 햇살이 발길 닿는 곳곳에 뻗어있었다. 고요하고 길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스칠 때 다른 것들은 다 잊고 말았다. 지금 이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았다. 낯설지만 안락한 기분을 꼭 붙잡고 걸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걷는 재미는 유럽의 소도시 골목 여행과 견주어 지지 않는다. ‘올드 트빌리시(Old Tbilisi)’ 에서만 볼 수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들, 오래된 벽면에 톡 튀어나온 발코니의 앤틱함은 아름답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오래되고 낡을수록 탐나는 것들은 여기에 다 모여있는 것만 같다.


‘갈색의 낡은 도시에 초록색 나뭇잎들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빛이 강한 오후에 그림자까지 더해지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을 더욱 완벽하게 해주는 것들은 따로 있었다.







| 모자 할머니



우리는 길을 걷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가마르조바(გამარჯობ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곤 했는데, 환한 미소가 선물처럼 되돌아오곤 했다.


모자 할머니도 그중 한 분이셨다. 자유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항상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무뚝뚝한 표정을 무장해제시킨 순간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드셨다는 조지아 전통 모자도 하나 구입했다. 할머니 옆에 나란히 서고 싶은데, 사방이 막힌 작은 공간으로 들어갈 방도가 없어 보였다.


“으응?! 어떻게 들어가는 거예요?”


내가 지어 보인 신기해 죽겠는 표정을 보고, 껄껄 웃던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웃으니까 눈이 보이지 않던 할머니는 급기야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주셨다.





| 손뜨개 자매



조지아에서는 바로 이러한 핸드메이드 제품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개중 가장 띄는 것은 직접 뜨개질하거나 수를 놓은 패브릭 제품이다. 앙증맞은 코스터(coasters)와 쿠션 커버,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러그가 뽐내고 있는 알록달록한 색감이 도시에 생기를 더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 손으로 만든 것은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나도 여자인가 봐...’


여행을 다니는 언젠가부터 수집하는 아이템이 하나 더 늘었다. 패브릭 제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거실에 깔아 두었던 카펫트나 부엌 작은 창문에 달려있던 커튼 같은 것들이 이제야 아른아른 생각이 난다. 마음 같아서는 커다랗고 두터운 러그를 하나씩 사 모으고 싶지만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것들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너른 마당에 깔린 러그를 바라만 보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전부 핸드메이드예요!” 하는 그녀들의 말에 이끌려 몇 가지를 사고 말았다.


체스를 두고 있던 아저씨들과는 끝내 인사를 하지 못한 아쉬움에 두어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흐르는 구름은 해를 지나며 빛 장난을 치고 있었다.




| 액세서리 레이디


나는 액세서리에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조지아라는 생소한 나라에서는 ‘착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착하다’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눈빛에서 그런 걸 읽었다.


예쁜 카페가 줄지어 있는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녀를 만났다. 직접 만든 팔찌와 귀걸이라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가을이니까 가을 색깔 팔찌를 구입했다.


‘조금 더 비쌌으면 안 샀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오히려 가격을 깎아 주었다. 나는 그녀의 따뜻한 미소까지 함께 구입한 셈이었다.





| 화가 아저씨와 자석 아저씨



올드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드라이 브릿지(Dry Bridge)’ 에서는 꽤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매일 열린다.

반나절은 예상해야 전부 다 둘러볼까 말까 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많다.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화가 아저씨가 자기소개글을 영어로 쓴 쪽지를 내밀었다. 때마침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그림은 그의 것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조지아식 만두를 먹고 있는 남자 세 명은 조지아 모자까지 쓰고 있어 맘에 쏙 들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모았던 보물들을 돗자리에 펴놓고 가격 흥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사모으는 기념품들도 언젠가 벼룩시장 한편에 놓일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이렇게 싸게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쩐담.’

할머니의 작은 보석상자 두 개를 구입했다.


이젠 집에 가려는데 만두 자석 하나가 눈에 띈다. 본인이 직접 만든 거라며 말하는 아저씨의 눈빛에 자신감이 넘친다. “정말? 진짜?”라고 말하며 자석을 만지작 거리는데 이건 진짜 디테일이 살아있네? 지문까지 남기며 이토록 작은 크기의 만두를 빚은 아저씨는 이제 활짝 웃는다.




| 중고 책방 청년



트빌리시에 도착한 날, 가장 처음 들른 곳은 중고 책방이었다. ‘Books’라고 커다랗게 써 놓은 간판을 무작정 따라갔다. 좁고 어두운 골목 끝에 작은 책 세상이 나타났다.


한 두 명의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재빠르게 종아리를 스쳐갔다. 작은 방, 작은 방으로 이어지는 책방 안 쪽에는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과 조금 대화를 하다가 한국 초콜릿 몇 개를 선물로 주었다. 오래된 책 냄새가 참 좋았다.


조지아어로 쓰인 어린 왕자 책과 조지아에 사는 새의 종류를 그린 그림책과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구입했다. 작은 크기의 책을 사고 싶다는 말을 기억한 책방 주인은 내가 책방을 떠나기 전에 급히 찾은 ‘작은’ 책을 선물로 주었다.


아... 이 작은 책이 얼마나 큰 의미가 되어 돌아오는지!




많이 걷고 많이 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하루도,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맛보는 하루도, 미술관에 콕 박혀 보내는 하루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하루도, 전부 소중하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가득한 그 곳에서는 특히 그랬다.






* 조지아 여행기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조지아 여행기 매거진에 다 담지 못한 여행기는 다음 온라인 서점에서 책으로 만나보세요 :-)

예스24 :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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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한 끼만 먹고 사모은 조지아 여행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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