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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May 02. 2022

이렇게만 하면 회사 5년은 다니겠는데?

그럼 이직하고 연봉 올려야지.

[ 00. 그 전 : ep.01/나 ]


나는 2020년도 새해에 맞춰 종합건축사사무소 OO에 공채 18기로 입사했다. 나는 2019년 여름, 영국에서 건축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이제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취업 준비를 힘들게 한 후에 얻어낸 결과였다. 보통 건축학과를 나온 취준생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나는 건축에 뜻이 있었고 나쁜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전에 2015년 학부가 끝나고 소위 ‘아뜰리에’라고 불리는 소형 건축사사무소에서 인턴 경험을 했기에 ‘메이저’로 불리는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고 5번의 면접을 끝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다.


건축사사무소의 들어간 건 온전히 내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현대엔지니어링에, 어머니는 삼성물산을 한번 써보라고 하셨지만 나는 반대하고 건축사사무소만 지원하기 바빴다. 나는 건설을 하는 시공사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보통 부모님들이 하는 대기업 취업 희망은 내 삶을 위해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았었다. 물론 부모님은 항상 내 의견과 선택을 존중해주셨고, 결정은 나의 몫이라는 가치를 가르치셨기에 내가 OO 건축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많이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내 선택으로 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갔고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취업이 되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아뜰리에’에서 인턴 당시 근거 없는 주 7일 야근과 직원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메이저’ 건축 회사에 들어온 건 다행이고 분명 좀 더 나은 근무 환경과 합리적인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대전본가에서 취업을 6개월 동안 준비하고 2019년 12월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원룸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20년 1월에 회사와 계약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OO는 그래도 국내 매출 순위가 꽤 높은 ‘메이저’ 건축사사무소답게 여러 가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고 이전 인턴을 했던 ‘아뜰리에’에는 없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나름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OO 건축 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사는 주거 분야에서 큰 성과를 들어내며 다양한 아파트 설계 사업을 수주받아 하고 있었고 꽤 매출도 잘 나오는 그런 회사였다. 물론 이 회사가 건축업계 최고의 회사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대기업 계열의 설계 사무소가 있고 (현대, 삼성, 포스코 같은 그룹의 계열사), 이를 포함하여 소위 규모가 있는 ‘메이저’ 건축 회사, 그리고 ‘아뜰리에’나 중소 건축사 사무소들이 있다. 잠깐 건축과 건설의 이야기를 하자면 건축사사무소는 보통 건축물을 짓는 공사에 들어가는 도면을 그리고 법적 허가 절차를 대행하여 사업 초기부터 끝까지 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한다. 우리 부모님이 희망하셨던 시공사는 알다시피 현대건설이나 대림산업처럼 건물을 짓는 일을 하는 그런 회사이다. 이렇게 건물이나 구조물을 짓는 일에 포함되는 모든 산업을 건설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시행사, 인테리어 업체, 전기, 소방, 구조 설계 등등 다양한 분야들이 건설 분야 안에 나뉘어 있다. 사실 시행사나 시공사에 비하면 내가 하는 설계 일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은 아니었다. 그리고 같이 유학했던 다른 과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연봉이 유학한 친구들 평균에 못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친구들에게는 “적당히 유명하고 적당히 좋은 회사”라고 말하면서 다녔다. 어디 가서 특별히 이름을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회사에 들어왔고 나 스스로 책임지고 살 수 있는 만큼의 돈과 시간을 보장받았다.


회사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평범했다. 첫 1년 동안은 신입사원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고 새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름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일 업무계획’이라는 것을 짜서 8시간을 채웠고 내 옆자리 동갑내기 사수인 용 대리님의 지시를 받아 일을 어렵지 않게 척척 처리해 나갔다. 사실 잘 알려주는 사수 덕분에 쉽게 여러 가지 일들을 배울 수 있었고 나 또한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따라갔다. 사실 신입사원이니까 어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소장(각 팀의 리더)님이나 프로젝트의 PM이 용 대리님에게 일을 전달하고 나는 그저 시키는 일만 시키는 대로 하면 됐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용 대리님에게 언제나 질문할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을 나는 다행이라고 여기며 업무에 충실했다.


건축회사는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지만, 우리 본부에서 사원들은 한 프로젝트에 계속 있지 않고 바쁠 때는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를 오가며 일했다. 현상을 할 때는 밤을 꼴딱 새우면서 일하기도 하고 여유로운 프로젝트에 배치되면 6시에 정시퇴근을 자주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에 따라 내 퇴근 후 삶도 달라졌지만, 특별히 퇴근 후에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되지 않았다. 본업인 이 회사에서 맡은 일을 잘하는 게 나의 우선순위였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듯 직장인은 업무를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몇몇 사람들은 건축사사무소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영국에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인턴 때 너무 호되게 당했는지 몰라도 ‘메이저’ 건축사사무소의 삶이 꽤 만족스러웠다. 신입사원 3개월 차에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도 들었고 하나은행에서 한 달에 30만 원씩 넣는 당시 고금리의 적금도 들었다. 월급은 만족스럽진 못해도 밀리지 않고 잘 나왔고 나를 포함한 10명의 동기는 목요일 점심마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각종 회사 뒷담과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동기 모임도 할 수 있었다(사실 이때가 평일 중에 가장 신나는 부분이다). 야근하는 날도 있었지만, 최대한 열심히 맡은 일을 끝내면 퇴근도 할 수 있었고 바쁠 땐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회사 시스템에는 주 52시간을 넘는 노동에 대하여 보상 휴가도 들어왔다. 그렇게 온종일 일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직접 해 먹고 예능을 보며 쉬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가거나 집에서 건축학교에 다닐 때는 못 하던 취미 생활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적당한 회사 규모, 적당한 네임밸류, 적당한 월급, 적당한 워라밸, 적당한 복지, 적당한 업무, 적당한 쉼, 적당한 스트레스. 모든 것이 너무 평범한 회사 생활이었고 적당한 적당함이었다. 나는 2020년, 내 삶의 평범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 이렇게만 하면 회사 5년은 다니겠는데? 그럼 그때 연봉 올려서 이직해야지 “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2020년 12월이 되어 있었다. 회사 사람들은 다들 연말 인센티브가 나올 것이라면서 얼마나 나올지에 대한 루머들을 생성 중이었고 나는 12월 24일 종무식 이후에 있는 긴 공동 연차를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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