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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5일 (토)

영 대접 : 요리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요.

by 재민

오전 10시 20분.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안성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지 않아 허기진 배를 잡고 한 시간 동안 달려 경기도 끝자락에 있는 안성 엄마 집에 도착했다. 엄마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외출 중이셨다. 근처에 사는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대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22개월 아기 조카와 누나가 나를 반겨주었다.


한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가 해주신 점심을 먹고 다 같이 대추밭이 보이는 카페에 갔다. 따뜻한 대추차를 마시던 엄마께 나는 달큰한 생강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자연스레 프로포즈를 시작했다.


“엄마. 내가 저번에 엄마한테 요리 대접해 준다는 거 있잖아. 그거 해보려고 하는데 어때?”


“그거 정말 하는 거야?”


“근데 조건이 좀 있는데 한번 들어 봐봐.”


나는 준비한 여러 가지 조건에 관해 설명했다. 한 달에 한 번, 11월부터 내년 3월, 총 다섯 번의 식사대접을 하고, 다섯 개의 컨셉을 가지고 진행할 것이고, 메인 한 개와 사이드 한두 가지 그리고 음료를 대접할 것 정도를 말씀드렸다. 분명 어젯밤에 설명하고 상의해야 할 내용을 아이패드로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몇 가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허술해서야!


“좋아.”


허술한 아들의 설명에도 엄마는 가볍고 경쾌하게 대답하셨다.


저녁 식사 후 안방에서 돋보기를 쓰고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시던 엄마께 다가갔다. 낮에 빼먹은 질문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허술하지 않게 손에 아이패드를 들고.


“엄마 아까 말했던 거 있잖아. 나 좀 더 물어봐야 할 게 있어.”


이번에는 엄마께 어떤 재료는 피하고 싶은지, 어떤 메뉴는 먹기 싫은지, 어떤 음식을 기대하는지 여쭈어보았다. 엄마는 너무 짜고, 너무 기름지고, 너무 매운 음식만 아니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못 드셔본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하셨다. 추가로 라면이나 떡볶이 같은 분식류의 메뉴는 피하고 싶다고. 나는 엄마의 말씀을 꼼꼼히 아이패드에 적어 담았다.


마지막으로 엄마께 “다 먹은 후에 맛 평가? 아니 맛 설명 같은 후기를 글로 써줄 수 있어?”라고 물었다. 엄마는 조금 당황하셨다.


“별거 아니고, 그냥 식사가 어땠는지 짧게 써주면 좋을 것 같아서.”


“알겠어.”


엄마는 후기까지 써주시기로 약속했다.


대화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장미가 생각났다. 엄마께 프로포즈 기념 장미꽃을 사다 드려야지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장미꽃을 드리는 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미꽃 한 송이를 프로포즈 한다고 드렸으면 얼마나 오글거렸을까?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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