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즐비한 대한민국에서 층간 소음은 데면데면한 이웃 간에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스무 살 이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는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제발 좀 그만 하라는 의미에서 윗 천장을 두드린 적도 있지만 아래층에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는 관심도 없었던 그들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할 때마다 이중인격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나서 기숙사 생활, 자취방 생활을 할 때도 층간 소음은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옆방 소음' 이란 표현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겠다.
청춘시대는 셰어하우스나 기숙사 생활의 판타지를 그려낸다.
한 학기 동안의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며 쪽문 근처에서 자취방을 구해 살 때였다. 1층에는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고 나는 2층에 살았는데 그때 2층에는 3개의 원룸이 있었다. 내 침대는 벽에 딱 붙어 있었는데 새벽마다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주인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곧 약혼할 사이라서 집에 자주 드나드는 모양이라며 주의를 주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그 이후에는 별 다른 소음 없이 쾌적한 원룸살이를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내 주변인들 중 자취를 하는 이들은 '옆방 소음'에 대해 토로하곤 했는데 집에 몰래 들어온 변태가 침대 밑에 있었다는 둥 이상한 괴담까지 돌곤 했다. 이후 교환학생을 가서는 꿈에 그리던 셰어하우스 생활을 했는데 그곳도 방음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내 옆방에는 엘 살바도르의 남자애가 살고 있었고 그 옆방에는 방글라데시인, 그 옆에는 독일인, 네덜란드인이 살고 있었는데 2층의 유러피언들 비롯 1층의 유러피언들은 시도 때도 없이 파티를 했다. 엘 살바도르 남자애한테 여자친구가 생기고나서는 스페인어로 속삭이는 소리가 다 들려서 이어폰을 끼거나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사실 교환학생에서의 셰어하우스는 환상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생각한 셰어하우스 살이는 '청춘 시대'급의 셰어하우스 살이었는데 미드 '프렌즈' 가 심어준 환상과는 전혀 달랐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는 쪽문 원룸살이를 청산하고 나서 졸업 무렵에는 2호선 라인으로 집을 옮겼다. 재수를 결심한 동생의 재수학원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고 그곳에서는 정말 층간소음, 옆방 소음 하나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옆집에는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사람이 사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조용해서 동생과 나는 정말 조심조심 라이프를 영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 다시 4호선 라인으로 넘어왔다. 절친이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집 보기에 동참해 주었고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행운빌라였는데 행운은커녕 1층이어서 햇빛도 잘 안 들어왔던 터였다. 나중에 그 집을 본 우리 엄마는 "너네 둘은 정말 안목이 없구나?" 하며 타박을 했다. 그래도 나름 의미를 부여한답시고 행운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며 그 집에 2년 동안 머물기로 했다. 대학가라 그런지 맛집도 많아서 그때 당시 엥겔지수는 최고 정점을 찍었는데 옆방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역시 극에 달했다. 서울의 경우 집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얇은 벽을 세워서 원룸 몇 칸을 늘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옆방 남자와 나의 방 사이에는 너무 얇은 벽이 있어서인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라든가 텔레비전 소리라든가 정말 별의별 소리가 다 들렸다. 화딱지가 났던 나는 영화를 아주 크게 틀어놓았지만 옆방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친구가 하루 머물고 갔던 어느 날 밤,대담한 내 친구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안다면서 나 대신 벽을 뻥 찼고 벽을 막 두드렸다. 그러니 정말 조용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때 1층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옆방 남자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1층의 끝자락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셨던 기억이 흐릿하게 난다. 얇디얇은 벽 때문에 소음을 감당하며 살던 불행 빌라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딱 한 달 고시원 생활을 했다. 그다음 집 계약과 불행 빌라 집 계약 기간이 딱 한 달이 떠서 고시원 생활을 하기로 했다.
고시원은 지옥고 중 하나다.
이번에는 외국인이었다. 정말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영어로 남자 친구한테 쏼라쏼라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도 통화할 때는 옥상 가서 했는데 개념 없는 외국인은 어찌나 웃어대는지 새벽에도 통화가 끊이질 않았다. 나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외국인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에이 뭐 한 달인데 참자. 어차피 여기 오래 있는 것도 아닌 걸.' 나도 그 생각에 참아 넘겼다. 고시원은 방이 너무 좁아서 하루 종일 거기 있다가는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영화 '기생충'으로 인해 반지하 생활이 각광받는데 우리나라 고시 원족들의 삶을 보면 외국인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한 달간의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2호선 쪽으로 이사 갔다. 이번에는 복층 오피스텔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인생 최대의 또라이를 만났다. 술만 먹으면 모든 물건을 던지고 맹수처럼 포효하는 인간이었다. 처음 이사할 때부터 수염이 덥수룩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왜 아침부터 이사를 소란스럽게 하냐면서 타박했다. 나한테 그랬으면 이해하겠는데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싹수없게 말하는 남자를 보면서 열이 뻗쳤다. 그러면 이사를 소리 내면서 하지 조용히 어떻게 하란 말이지? 열이 식혀지지 않았는데 그 남자는 머쓱했는지 딩동 하더니 박카스를 건넸다. 다시 마음이 풀어졌는데 이후 이 남자가 새벽에 포효할 때마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겁이 났다. 복층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2층에서는 윗집 소음인 층간소음을 감당해야 했고 옆집 남자가 발광할 때마다 귀를 닫아야 했다. 한 번은 여자 친구를 밖으로 쫓아냈고 여자 친구는 울면서 나갔다. 두 사람이 어떻게 싸우는지도 다 들렸다. 정말 무서웠다. 새벽에 술만 먹으면 옷을 던지고 물건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잠귀가 어두운 나도 가끔은 와장창 소리에 깰 때가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술버릇이 괴물처럼 포효하는 것인 줄 모르는 듯했다. 게다가 새벽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불곰처럼 소리를 내며 뛰어갔다. 너무 무서워서 관리인에게 말했지만 관리인에게는 한없이 착한 양으로 돌변하면서 자신이 위층 소음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남자 옆방의 다른 여자도 우리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는데 그 사실을 자기만 몰랐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여자는 먼저 이사 갔다. 그 이후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는 층간 소음 조심하자는 글까지 붙었다.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떨며 조심조심 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사를 준비하면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소리가 옆방까지 들렸는지 초인종을 누르더니 조용히 해 달라고 말했다.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안하무인인 인간이었다. 새로 이사 올 누군가에게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이사를 그토록 원하는 이유가 옆방 남자 때문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새로 이사 온 그 여자분은 또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는지, 죄송해요 얼른 이사를 가시길.
스탠리 큐브릭 샤이닝 소름끼치게 무섭다.
그 이후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에서는 다들 예의를 지키며 살아서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잠귀가 어두워서 밤에 세탁기를 돌리거나 샤워를 해서 물소리가 나도 개의치 않는 편이다. 물 쫄쫄거리는 소리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지만 쿵쾅거리는 소리는 참을 수가 없다. 청소기를 새벽에 돌려도 괜찮은데 못질하는 소리는 정말 참아줄 수가 없다. 지방으로 내려와서 원룸 두 곳에 살아봤는데 처음 살았던 원룸 집에서 밑에 살던 아저씨가 술만 먹으면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는데 그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망치질을 해대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옆집인 줄 알았는데 아랫집에서의 망치질 소리였다. 망치질 소리는 너무 위협적이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 '샤이닝'에서의 망치질이 떠올랐달까. 그곳에서의 위협적인 망치질 소리 이후 새로 이사한 곳에서는 층간 소음, 옆방 소음이 거의 없다. 주말마다 옆집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뭐가 그렇게 행복해서 웃는 걸까.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행복이 전파되는 웃음소리라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그럴 때는 나도 이어폰을 양 귀에 꽂으니까. 주중에는 조용한 게 어디야, 술 마시고 난리를 피우지 않는 게 어디야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쉴 뿐이다. 언제쯤 옆방 소음, 층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