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는 최고의 치유법이다

2장. 왜 글쓰기인가?

by 이태우

스트레스나 상처받았을 때 어떻게 푸나요? 친구와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도 있고 술 마시고 담배 필 수도 있습니다. 주로 남자들이 술이나 담배를 피고 여자들은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나 상처를 푸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넷플릭스나 티빙, 웨이브 등의 OTT에서 좋아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거나 영화를 보며 풉니다.


저의 경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컨디션에 차이가 있습니다. 작년 초 전통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TV에 서 재미있게 봤을 때 그리고 다음 주에 보기 위해 그 드라마를 기다릴 때 즐거웠고 일상에 활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는 약간의 허무함과 ‘이제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취향에 맞는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들으면 그 영화가 기다려졌고 집중해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지난 해 1월에 본 <노량: 죽음의 바다>와 6월 초에 관람한 <원더랜드>가 그런 영화였습다. 그런데 볼만한 영화가 없을 때에는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술, 담배, 수다, 영화 또는 드라마 등은 스트레스나 상처로부터 도망가는 행동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겠지만 제대로 바라보고 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나 상처를 푸는 데 효과적인 글쓰기

반면에 스트레스나 상처를 직면하고 푸는 강력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힘들었던 그 순간이나 상황으로 돌아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힘들었던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글을 쓰면 그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글쓰기를 통해 그 사실 위에 자신이 올라설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위한 준비할 도구는 간단합니다. 펜과 노트만 있으면 됩니다. 볼펜, 연필, 사인펜, 색연필, 매직 등 아무 펜이나 글을 쓸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노트도 마음에 드는 것에 쓰면 그만입니다. 저처럼 가로로 일정하게 줄이 쳐진 책 크기 정도의 노트를 써도 되고 쓰고 있는 다이어리에 써도 되며 프린트 후 남은 이면지에 써도 됩니다. 내 감정이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요즘에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많이 나와 있어서 글쓰기에 활용하면 좋습니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등의 컴퓨터도 좋고 늘 들고 다니는 휴대폰의 메모장에 적어도 괜찮습니다.


글쓰기의 경제성과 손 글씨의 효과

그리고 글쓰기는 술, 담배, 수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경제적입니다. 술은 혼자도 마실 수 있겠지만 보통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십니다. 보통 밖에서 마시게 되는데,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마시더라도 3만 원에서 5만 원 정도는 나옵니다. 담배는 한 갑에 최소 4,500원입니다.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 등의 커피 두 잔 값이 듭니다.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시청하면 비용이 들지 않겠지만, 다시보기를 하려면 OTT나 플랫폼에서 비용이 듭니다. 영화도 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펜과 노트만 있으면 끝입니다.

컴퓨터나 휴대폰만 있어도 됩니다.


저는 손으로 쓸 때와 컴퓨터나 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쓰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 봤는데, 자신의 심정을 글로 쓸 때는 손 글씨가 훨씬 감정을 쏟아내는 데 좋았습니다.


손으로 펜을 잡고 노트에 글을 적어나가는 것이 휴대폰 메모장에 터치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은 뇌에서 손으로 바로 생각이 나온다고 느껴졌습니다. 반면 휴대폰으로 쓰는 것은 글씨는 잘 써지지만 뭔가 감정이 잘 실리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글쓰기는 다른 방법에 비해 아주 경제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받았던 스트레스나 상처를 털어놓을 때 그 사람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거나 오히려 문제가 당신에게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쓰면 자신과의 실제적인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나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책 쓰기로 극복한 실직 후유증

필자는 다니던 직장에서 실직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은 일이라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일이란 어떤 것인지', '세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나 결과보다 직장에서 잘렸다는 사실만이, 내가 더 이상 출근하지 못한다는 것만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당시에는 실직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실직을 당했던 그달 초부터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을 쓰기 위해 교육을 듣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교육이 당시 어려웠던 삶을 버틸 수 있었던 끈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전까지의 저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미친 듯이 글을 썼습니다. 목차에 따라 한 꼭지 한 꼭지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더듬어 이전 경험을 글에 담았습니다. 퇴근 후에 엄청난 속도로 원고를 썼습니다.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집 근처 도서관이나 카페와 집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은 힘들었던 기억이나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글쓰기나 책 읽기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중독성이 있는 게 확실하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이것이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쓴 책은 책을 쓰기 시작한 그해 가을에 원고를 모두 마무리했습니다다. 책 한 권은 보통 A4 100장 정도 분량인데, 저는 10장을 더 썼습니다.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다는 성취감이 들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이 ‘글쓰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쓰기에 충실히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마음먹고 쓰면 책 한 권 분량은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졌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글쓰기에 집중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을 잊을 수 있게 되었고 저도 모르게 서서히 치유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힘든 일에 대한 감정을 푸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글을 쓰면서 그 상황을 직면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회피보다는 직면이 더 당당하면서도 이전의 경험을 다시 바라보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을 경험했나요? 글을 써 보세요.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힘들었나요? 노트를 펴고 펜을 들어보세요. 공부가 잘 안되고 시험 성적이 잘 안 나왔나요?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열어서 한 글자씩 써 보세요. 쓰기 전보다 쓰고 난 후가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치유받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래, 다시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