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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엄마인 나

1장. 여자 마흔, 정체성 위기

by 이태우

마흔의 여자는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결혼을 했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아이도 있다면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서른 정도에 결혼을 했다고 가정하면, 당신은 어느 새 결혼 생활 10년 정도에 접어든 주부입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지만, 아주 어릴때처럼은 아닙니다.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어느 정도 하고 있습니다. 엄마인 당신이 볼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말이죠.


가정에서 당신의 손길은 아주 중요합니다.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에 당신의 작고 사소한 손길은 가족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10여 년의 세월동안 익숙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공기나 물과 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비록 가족이기는 하지만 남편과 아이를 먼저 챙기는 날들이 많아지면 어느 새 자신에게는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구 엄마가 나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진짜 나'라는 정체성을 찾기 바랍니다. 가족 관계에서 어떤 역할로 규정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흔 즈음의 여자라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주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진정한 자신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그동안 뒤로 미뤄두었던 자신을 찾기 바랍니다.


얼마 전 끝난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던 어느 40대 여자 수강생이 생각납니다. 저는 첫 시간에 보통 수강생 소개를 시킵니다. 이름과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동기 그리고 이 수업을 통해 바라는 점 등을 이야기해 달라고 합니다. 그녀는 업무로 기획서와 보고서 등의 문서를 작성하는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쓰기 수업에서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써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10주에 걸친 수업 가운데 무려 다섯 번 정도인 절반 정도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보면 첫 시간에는 의욕에 불타 매주 글을 쓸 것처럼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 자신의 차례가 와도 글을 못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습니다. 마치 글쓰기 수업의 글을 미리 준비한 것처럼 자주 그것도 A4 1장이 넘게 많게는 두 장 가까이 써올 때도 있었습니다.


글쓰기 수업의 주제는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 가장 소중한 보물, 마음이 편한 사람, 몸이 아팠던 순간,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주제가 때로 글을 쓰기 힘들었을 때도 있었을텐데,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게 충실히 때로는 어떤 소설의 내용을 자신의 글에 알맞게 변형하여 써 왔습니다.


글쓰기 강사로서 제가 보기에 그녀는 글을 쓰면서 처음 생각했던 자신의 글을 쓰겠다는 목적이 잘 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산 서면의 복잡한 교통상황에서 길을 물어오던 노인에게 친절하게 길안내를 했던 글과 자신의 꿈인 동네책방을 실제로 존재하듯이 쓴 글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장에서는 웃어달라는 마지막 글까지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글을 썼습니다. 더이상 일 때문에 형식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진짜 나를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찾고 만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진정한 자신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진짜 나를 제대로 만나는 최고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 예시로 든 저의 수업에 참여했던 어느 마흔의 여성이 사용했던 '글쓰기'라는 방법입니다.


요즘 어떤 게 고민이신가요?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설거지나 산책할 때 반복해서 떠오르는 사건이나 장면이 있나요? 꿈꾸는 미래의 계획이 있나요? 어떤 주제든 좋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써 보세요.


생각하는 어떤 것이든 일단 한 문장만 써보세요. 그러면 그 첫 문장을 통해 다음 문장이 써지고, 그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이 글을 쓰는 체험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글쓰기는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지금 노트를 펴고 컴퓨터를 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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