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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리매트릭스 Aug 25. 2024

공황장애를 겪을 때 수렁에 빠지지 않는 팁

우울증이 주는 고통


100%의  의지가 아니다.




우울은 내가 했던 모든 노력들과 이룬 것들을 한순간에 앗아가기도 하고, 강했던 의지마저 꺾어버린다.


우울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입에 담기가 거부감이 들겠지만 괜찮다. '자살'다. 당시의 나는 공황발작 이후 그것이 장애로 굳어진 지 몇 개월이 흐른 뒤였고 약도 먹고 있었으며 증상들도 어느 정도 경감되어 일상을 되찾았을 무렵이었다. 공황장애가 나에게 가져다준 우울은 이때 즈음 무기력을 넘어서 또 다른 두려움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우울은 무기력을 시작으로 자살사고까지 확대되며 나에게 사건화 되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날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그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도대체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전의 나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고 나를 두렵게 했다. 그제야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말하는 우울하다는 형용사와 실제 우울증이라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당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고의 흐름


1.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과 그 결과로 인한 스스로의 방치로 현재를 인지할 때 밀려드 자괴감

2. 쓸모없는 나라는 자괴감에 따라오 내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3. 내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게 되면서 그 커다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떠오르는 자살

4. 자살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5. 내가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인정을 하게 되면 실제로 그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움

6. 5의 두려움은 인지오류(0.5초)를 반복하며 우울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7. 이 기간이 길어지며 반복되다 보면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하고 똥이 마려우면 화장실 가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행위를 하려고 하는 단계에 이른다. ㅇㅇ하겠어!라는 다짐이 아니라 그렇게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난 행위까진 가지 않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흐름인지까지 느껴보았다.


처음 며칠은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의 터부가 주는 거부감과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도 힘에 겨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내 머릿속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오롯이 100% 나의 의지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것은 실제로 나의 의지가 아니라 병이 일으킨 과장되게 확장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지도 뭣도 아닌 그냥 증상이었다. 벌레에 물리면 피부가 붓고 가려워지듯이 말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


왠지 밖으로 꺼내어 실체를 만들어 버리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남편이 나를 말려줄 수도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었고, 그런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자신도 그런 적이 있으며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답해주었는데 그것이 아주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아는 한 능동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도 런 정서를 겪을 수도 있구나.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왠지 호들갑 떨지 않고 내 증상이 특별히 잘못된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처음에는 죽음이나 자살이라는 것은 매우 중대한 상황이고 나는 그 상황 안에 있으니 위험하고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 사고의 마지막에 깨달았던 것은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 그것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나였다. 두려움이 바탕인 공황장애를 가진 내가 느낀 것은 죽음을 떠올린  마음이 나를 죽일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고 나서야 그 증상이 서서히 없어졌지만 그때는 그 느낌이 왜 사라졌는지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나서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유는 받아들인 순간 내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될까 봐였지만 내가 했던 받아들임은 죽음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 둘은 양극에 있다고 할 만큼  매우 다르다. 결국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터부시 할수록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 안에서 죄책감으로 자리 잡아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초반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마음을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직면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그것은 덩치를 부풀리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애초에 공황장애 환우이고 이 병이 야기하는 수많은 증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공부로 알았기 때문에

그때의 내가 했던 생각은


 '아! 내가 마음이 아프긴 아픈가 보다

  이것도 그로 인한 증상이겠구나 되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느낌이네.'


하는 사고였고 거기에 다른 어떤 의미도 판단도 더 얹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본능적인 사고에 내가 관여할 힘은 없다고 인정하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놓아버렸다.

어떤 증상이라도 임계점은 있기 마련이고 다 지나간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며칠의 고비만 넘기면 또 살아지고 그 파동은 계속 반복되었지만 나는 그 사이에 인지오류를 바로잡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겪을 때마다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며 흘려보낼 수 있었고 크게 확장시키지 않자 그것들은 금방 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의 사고습관


견디기 힘든 일->쉽게 편해지길 추구함


 이 사고흐름은 특별히 지금 내가 우울증 때문에 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병이전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려는 선택과 행동을 반복해 왔다.


병이 주는 병증은 사건을 확대 재해석해서 힘든 일로 인지시키고 증상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사고흐름 자체는 그동안의 나의 습관이다. 병이 극에 달하면 특히나 나의 사고체계가 바늘구멍만큼 작아져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고통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악몽 같은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최악의 상태가 된다.


 아래 두려운 뭔가를 인지한 공황 이를 만나보자.


귀...귀신?


1. 저것은 귀신 머리채인가?-사건
2. 확인하기 무서워.-일반적인 계산(선택의 기로)

3. 아마도 난 악마에 빙의될 거야-병이 주는 확대 재해석(힘들 때 하는 선택-죄책감 느낄 필요 없음)-자살사고나 나태함 같은 것

4. 무서우니까 일단 피하자.-사고습관

5. 비닐봉지였던 귀신 머리채는 회피의 결과로 인해 지옥의 왕 그 자체가 된다.-이 결과로써 나의 증상들 또한 확대 재생산된다.


병중에 회피는 반복할수록 과대재생산 된다.


이것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 병중에 내가 극단적인 사고나 나태를 선택한 것에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이다. 나는 2~4번 모두 다 내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2번까지는 지극히 일반적인 흐름이 3번은 병이 주는 과대 재해석이4번은 내가 해왔던 사고습관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4번뿐인 것이다.


직면하면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두려움-회피(X)

두려움-직면(O)


너무 힘들 때

극도의 우울일 때

너무 힘들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괴감을 느끼는 것밖에 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생각들과 자괴감은 병증이 주는 과장된 결과임을 이해하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수용하려고 해야 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 괴로움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도 밥을 한 숟갈이라도 넣으려 해 보고 단 몇 분이라도 움직이고 즐거움을 줄만한 것을 찾아서 하고(도파민에 절여지는 것 제외) 어떻게 하면 편해질까를 생각하며 외부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내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해야 한다.(이때 하는 왜?라는 질문은 걱정이 아니라 사유이다.-앞선 글들에 있는 알아차림을 말한다.)

뭔가를 해서 갑자기 좋아지기를 바라지 말자.  이미 나온 증상들은 어느 정도 내 안에 머물다가 간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한다.  대단한 것을 해서 결과를 얻으라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잘 모르니 참고 견디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 습관이 반복될수록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죄책감은 내가 하는 사고와 행동들이 100% 나의 의지라는 확신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병증이 주는 과장된 판단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들도 하다 보면 결국 습관이 된다.


 이후 증상의 파도 중에 내가 암흑에서 나와 수면밖으로 얼굴을 내밀수 있게 되었을 때가 더욱더 중요하다. 들 때는 무너질지라도 이때에 살만해졌다고 안일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두려움->회피


 이 사고회로를 바꾸는 작업을 반드시 해야만 다.

이때야말로 힘들 때를 위한 대비책을 세워 예방을 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운동을 하고 상담을 받고 심리에 대한 공부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아플 때에만 상담이나 병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시도들은 우울을 낫게 해주는 방법이라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힘든 상황에도 회피하지 않고 뭐라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기회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하루 루틴을 정하고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며 나아져도 계속해서 공부하며 진짜 나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이유다.

컨디션이 돌아온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운동을 하고 외출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병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나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시작해 보자. 예방이 최고의 치료방법이다. 나는 나를 항상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힘든 시간에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힘든 일->직면하고 시도함


성공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조금씩 내 안에 기록되어 지금의 내가 되고 이후 또 비슷한 증상(사건)이 오더라도 나의 뇌가 '기억+계산=판단'이라는 것을 실행할 때 판단이라는 답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기억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답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


자책 금지. 이것은 병이 주는 확대 재해석된 느낌과 정서일 뿐이다.

내 100%의 의지가 아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주 보아도 된다.

그리고 회피로 흐르는 나의 사고습관을 인정하고 나면 그것을 바꾸는 습관을 다시 들이자. 그러면 되다. 오래 걸리겠지만 바꿀 수 있다.


쓰다 보니 두려움을 넘어서는 방법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우울이든 불안이든 바탕에 있는 마음은 다 비슷하다. 단지 우울은 부정적인 마음(두려움과 불안)의 억압(회피)이 긴 시간 지속될수록 무기력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뿐이다.
이 글은 공황장애 환우의 기준으로 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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