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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리매트릭스 Jul 07. 2024

밸런스 게임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이 있다.

나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1.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는 대신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2. 예술품이 가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신 이것을 소유할 수 없다.


소유vs감각


난 2번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옵션을 넣는다면 어떨까?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경험을 의미한다.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옵션은 바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일련의 과정이다.


 쉽게 2번을 택했지만 실상  일상의 선택들은 1번을 향해 있다. 눈에 보이는 실체가 분명하고 그것을 갖고 싶다는 것은 내가 당연히 그 가치를 알아보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위의 예시가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인생을 뒤흔들 큰 선택까지 매우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신이 빚은 아름다운 작품은 분명히 여기저기 존재하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도 수없이 존재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각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치러야 할 과정과 결핍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특정한 디자인의 옷에 몰입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 특정 디자인의 을 보면 나를 떠올릴 만큼 그것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명품이나 비싼 것들은 아니었지만 그 옷들을 사는 것은 꽤 긴 시간 동안 나의 루틴이었다. 그 당시 한 달에 한 번 용돈이 입금될 때와 불노소득이 생겼을 때에 일부를 그 쇼핑에 소비를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사고 싶은 것들을 다 살 수 있는 여건이 되고 남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어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스스로가 만족스럽고 여유로운 상태라면 그럼에도 이것에 돈을 쓸 것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이전에는 내가 정말로 그 옷들을 원하고 갖고 싶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소비를 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한 것은 그 옷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소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을 가지고 싶었던 거였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그 비슷비슷한 옷들을 계속 소유해도 그 감각은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필요할 때 이외에 그 소비를 멈추었다. 애초에 큰돈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 돈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원하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에 소비를 한 것인가 아닌가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 하는 나만의 질문법


1. 이것을 보여주거나 자랑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무인도라도 그것을 원하는가?

2.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가질 수 있는 여건이더라도 당장 이것을 갖고 싶은가?


이 질문을 거치고 내게 남은 쇼핑 리스트에 필요한 물건 이외에 단 한 개도 남지 않았다.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감각을 원하고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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