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판단과 예측)은 멈추는 것
멈추지 않는 생각들은 아픈 것도 아닌데 나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병증이 한참 진행될 때 하는 생각들은 쓸모없는 상념들로 꽃을 피운다. 내가 공황장애이기 때문에 이 걱정을 하게 된 것일까? 내 경험상 그렇지 않다. 내가 하는 이 불필요한 걱정의 반복 행위는 내가 병 이전에도 계속해오던 사고 습관이다. 내가 이전에도 했던 사고습관은 내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선택들을 말한다. 병 이전에도 나는 당장에 필요한 손쉬운 방법들이나 회피할 수 있는 방법들만을 선택해 열심히 생각한 뒤 행하고 최선을 다했다 자신하며 자기 위로를 하곤 했던 거다. 지금 병중이라고 해서 내가 특별히 행하는 사고 행위가 아니란 뜻이다. 단지 병이 진행될 때에는 불안도가 높고 온몸이 민감해 작은 느낌이나 외부의 이벤트도 엄청난 사건으로 인지해 확대해석하기 때문에 너무 두려운 나머지 걱정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므로 그 자체도 불안하게 느낄 뿐이다.
그러니 걱정은 뇌가 나를 고통에서 건져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다. 다만 제대로 된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그 순간에만 매몰되어 자꾸만 언발에 오줌누기를 반복하게 된다. 나는 왜 자꾸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한 가지로 정의하긴 힘들다. 꼬꼬무때 생각들은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내가 오늘날까지 쌓여 이루는 생각들이기 때문에 딱 꼬집어 한 가지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꼬꼬무의 조건
병 이전에도 행하던 사고습관->이것은 병이전에도 내가 지금처럼 이해 못 할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편에 쓴 것처럼 견디기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쉽고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는 사고습관을 말한다.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 본 경험이 없음->나는 이전에 어떠한 사건이 닥쳤을 때 제대로 시간을 들여 합리적인 사고로 긴 시간 인내하며 근본적인 것을 제대로 해결해 본 적이 없다. 이 말인 즉 나의 뇌는 꺼내어 쓸 합리적인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꼬꼬무는 너무나 당연한 기억+계산=판단의 결과인 것이다.
병이 진행 중인 상태->병이 진행 중일 때는 불안(공포)이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다. 이성적인 사고행위를 하는 것이 어렵고 눈앞에 닥친 것을 확대 재해석하므로 작은 느낌이나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에 대해 하루종일 생각이 떠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나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미 나의 뇌는 결과를 예측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사고한다. 나의 역사가 그 증거이다. 나는 실패할 것이며 제대로 대처를 못할 것이며 코앞에 있는 문제만 가리려 들다가 결국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나의 무의식이 결국 부정적인 예측만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꼬꼬무가 최선이라고 믿는 것이다. 작은 증상이나 느낌에도 심지어 아무 일이 없을 때조차 나의 뇌는 편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저런 상황에서 나를 방치했다가는 결국 나의 존재가치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뇌는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의 뇌는 이것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병이전에는 걱정을 아무렇지 않게 실컷 하던 사람도 이때에 꼬꼬무의 생각에 빠져들면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생각 자체가 고통으로 치환되니 하면 안 된다는 인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생각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생각을 멈추는 것에 있다. 사실 생각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고 행위가 제대로 된 사유가 아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의미 없는 걱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그런 사고행위가 불필요하고 답이 없는 생각들이라는 것 또한 뇌는 과거 나의 행적을 증거 삼아 기가 막히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자기 신뢰가 무너지는 기초가 되어 무기력이나 죄책감으로 억압되었다가 이후 불안이나 우울로 재창조 되게 된다.
뇌는 판단한다. 내가 무언가 걱정을 계속하고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여전히 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굉장히 이상하지만 논리적으로 맞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므로 그 답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걱정을 선사하게 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걱정으로는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 불안은 실체가 없고 내 안에서만 존재하므로 아무리 이유를 찾고 방법을 찾아봐야 끝이 없다,
... 하면 어쩌지?라는 것에 국한된 이 사고를 멈추지 않는 다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도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아무런 이벤트가 없을 때도 걱정의 구실을 만들어 행하기 시작한다. 건강염려나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주변상황을 체크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가까운 병원, 화장실, 빠져나갈 곳 등등)
걱정을 시작했다면 본능적으로 지금 당장의 마음이 편한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나를 불안과 공포로 데려간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한다. 내가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에 대한 습관적인 반응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이때의 나는 걱정이라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멈추어야 하지만 그 순간 두려움이라는 엄청난 저항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거부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걱정의 꼬꼬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순간의 저항감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멈추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이것은 이병을 가진 이들에게 필수적이다. 나는 이제 당장의 내 기분이 아닌 먼 미래의 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며 바로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공황이 나에게 찾아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걱정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 같을 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생각을 계속할 거라면 차라리 방법을 찾으려 하지 말고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 보자. 하지만 왜라는 자기 사유가 걱정으로 쉽게 변질되는 사람이라면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낫다.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고 질문을 하자.
왜? 뭐가 두려워?
생각이 멈추어지지 않을 때 딱 3까지만 세고 잘 생각해 보자. 뭐가 걱정이 되는 거야? 왜 걱정하는 거야?
내가 왜?라는 사유 끝에 다다랐던 답들은 절대다수가 단순히 그 불안의 구실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전하다 느끼지 못할 때 오는 증상에 대한 두려움 그로부터 발생할 나의 못난 모습 거기서 비롯될 존재가치에 대한 훼손이 그 끝에 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면하는 것과 거기서 느껴질 죄책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하는 사고 행위인 것이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이렇게까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끽해야 불편한 마음을 느낄 뿐 환우들처럼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환우들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그 어떤 것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실체 없는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불안에게서의 자유는 이때에 선물처럼 주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살만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즉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더 이상 과거의 사고습관으로 생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하루루틴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습관이다. 이후에 내가 힘들 때 이것들은 빛을 발한다. 힘들 때 꼬꼬무를 하고 싶지 않다면 힘들지 않을 때도 그 습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걱정이든 아니든 생각은 멈추는 것이다. 힘들 때의 나를 위해 할 수 있을 때 이것을 연습하도록 하자.
생각을 멈추는 방식(알아차림)
1. 생각(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2. 내가 한 생각에 대한 판단 금지(좋다 나쁘다 잘했다 잘못했다 금지)
3. 왜 그 생각을 했는지 사유하기(시간이 길어져 다시 걱정으로 변질된다면 당장 멈추고 움직임)
4. 걱정인지 사유인지 헷갈린다면 걱정일 것이니 아직은 사유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이때는 움직이거나 신경을 다른 곳에 쏟을만한 일을 만들자.(게임이나 릴스같은 도파민에 절여지는 루틴 제외)
이것들을 하는 이유는 나의 뇌가 걱정이라는 자동사고를 하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꼭 저 방법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든 증상이 나아지고 좋아진 뒤에는 꼭 저 루틴을 실천해 보자.
오랜 명상수련을 하신 분이 아니라면 생각을 멈추는 것 자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뇌는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일을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스스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기분 나쁘니 느끼기 싫고, 이것은 기분이 좋으니 더 느끼고 싶다. 하는 바로 그것이다. 모든 불안의 소재는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심판에 대한 공식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식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알아차림 명상의 핵심이기도 한데 꼭 명상을 하고 있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이것을 가져와야 한다.
일상이 곧 습관이고 습관은 나만의 공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