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추억
어제 낮 무렵에 오늘 수능을 앞두고, 학생들이 응원을 받으며 학교를 나서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오늘 하루간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지금에서야 뉴스를 보니 수능이 끝났다는 기사들이 보인다.
수능. 벌써 까마득히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수능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 역시 아주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다.
교복을 입고 다닐 땐 언제 수능을 치고, 맘대로 살아보나
대학을 다닐 땐 언제 졸업해서 내 능력을 뿜어내며 살아보나
뭐 그런 생각으로 다녔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랬던 시간이 아득하다. 그땐 미래를 기다렸는데 그 미래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걸 기다리나.
그때의 활화산 같던 열정, 도전 의식, 의욕과 야망, 덤벼라 세상아 등의 마인드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때랑 지금을 비교해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때의 것들은 언제부터 시나브로 엷고 옅어진 걸까.
세상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보면 눈물이 난다는 말을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런 순수를 보면 눈물이 난다. 이젠 세상의 때도 좀 묻었나 보다.
때는 좀 묻었을지언정 추억은 여전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나 또한 여전하다.
조금 잊고 옅어진 것들이 있지만, 살면서 알게 된 것들은 훨씬 많아졌고 여전히 배울 것들이 많아서
여전히 궁금하다. 삶은 그렇게 짙고 옅고 피우고 지고 또 틔우는 것을 반복하는 것.
고3 때, 수능 답안지를 채점하며 생각보다 못 본 가채점 성적에 크게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재수를 생각했다고 개의치 않은 척 넘겼지만 실은 내 인생이 거기서 낙오될까 봐 겁이 많이 났었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꼈던 첫 순간이라 숨고 도망가고 싶었다.
예측불허의 삶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 여전히 생각하면 먹먹하다.
그 기분으로 재수 생활을 쭉 이어갔다면 너무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나는 망각이 짙은 사람이었다.
겨울 지나고 봄이 되니, 피는 꽃에 기분이 좋았다가 살랑이는 봄바람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보내니 생기가 돌았다. 여름엔 좋아하는 수박이랑 복숭아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서 가장 맛있을 때 양껏 먹으면서 마음의 허기를 달콤하게 채웠다. 살도 제법 쪘다. 봄 다음으로 좋아했던 가을에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돌려 들으며 다시 수시 준비를 했고,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겠다며 와신상담했다.
고3 때 씁쓸하고 춥게 졸업해서 또 그러긴 싫었다. 그래서 절대 놓치지 않을 준비를 했다.
만회의 기회는 언제나 오고, 반등의 기회도 언제나 온다고 해맑게 그러나 굳게 믿으면서.
속는 셈 치고였지만 어차피 낙장불입의 상황이었고 안 믿으면 나만 손해였다.
그런저런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나 같은 어른이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한 번쯤은 살아봄직하다고. 인간으로 살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라서. 설령 심장이 쿵 내려앉거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한다면 그만 포기하진 말고 속는 셈 치고 해맑게 그러나 굳게 믿으면서. 절대 놓치지 않을 준비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그게 뭐든. 순수하게 믿고 행동하면서. 그게 진짜 땡땡하고 강한 힘이더라.
끝까지 질 건 아니니까 한 번 혹은 두 번, 몇 번은 고꾸라져도 해보시길.
감히 고집부릴 자신이 있다면 순수한 열정으로 밀어붙여서 끝내 원하는 것을 얻어내시길.
수능 보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수능은 기억에서 흐려졌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매달리고 달려드는 건 여전하네요.
이 인생은 얼마만큼 두드려야 탄성이 터질까. 그게 궁금해서 부지런히 살아갑니다.
그럼 오래전에 수능 본 사람은 다시 고집스레 일하러 가보겠어요.
오늘의 일기도 끝. 그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