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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르기니 Yurgini Nov 18. 2024

평온한 일기

이른 아침으로 돌아가기

나는 고등학교를 꽤 멀리 다녔다. 인천에서 용산으로. 

이른 나이에 독립은 안된다는 부모님 말씀 때문에 학교가 멀어도 자취나 하숙은 꿈도 못 꿨다.

때문에 이른 새벽에 학교 갈 준비를 했는데, 보통 4:30분에 일어나서 5:20분 첫 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당시엔 다행히도 집 앞에서 서울역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고, 우리 집은 그 버스의 출발지 근처였기에 편히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앉자마자 못 잤던 잠을 자고 일어나면 서울역에 도착하는 게 일곱 시 무렵. 

서울역에서 남영역까지 한 정거장을 더 가면 학교였다. 


나는 학교에서 제일 빨리 도착해 있던 학생이었고, 제일 먼 길을 오가는 학생이었다. 

“근데 너는 인천에서 어떻게 왔다 갔다 해?”가 제일 익숙한 질문이었다. 


학교 생활이 워낙 재미있어서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고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라 즐거웠다. 




3년간 그렇게 지내고 대학교는 신촌이었다. 기숙사가 되면 좋겠다 싶었지만, 인천은 통학 가능이라 논외 지역이었다. 부모님은 용산보다 신촌이 가깝고, 학교와 그 뜻을 같이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자취도 하숙도 불가 통보를 선언하셨다.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신촌과 인천을 오가기 시작했고 내 생활 구역도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는 신사역에서 했고, 알바비로 다녔던 학원들은 여의도와 압구정 로데오에 있었다. 보통 평일엔 학교와 학원을 오갔고, 주말엔 알바를 했으니 일주일 내내 인천과 서울 곳곳을 오가며 생활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5년간, 그 생활을 지속했다.


이쯤 되면 서울에 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인천공항에 출퇴근을 하셨기 때문에 끝내 우리 가족이 서울에 사는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은 판교였다. 

이건 좀 나도 아... 싶었다. 그땐 최신 트렌드를 보유한 IT 스타트업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회사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볼 생각도 안 했다. 그렇게 안일했다 내가. 이후에 면접을 보러 가면서야 아 여길 붙으면 큰일인데 싶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첫 면접에 첫 회사에 붙게 되었고 그렇게 판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판교에 가게 되었음에도 부모님은 자취와 독립에는 반대하셨다. 

아니 부모님 내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십니까, 라며 독립을 해버릴까 싶었지만

아휴 이것 참. 주머니 사정이 아쉬운 사회초년생이었던지라. 고분고분 또 출퇴근을 했다. 


19살에 재수를 하며 자동차 면허증을 따지 않았던 것이 그때가 되어서야 꽤 원망스러웠다. 

아 운전면허만 있었어도 내가 출퇴근을 자차로 했을 텐데… 


하지만 여전히 운전면허를 딸 시간은 좀체 나지 않았고, 

버스를 타면 곧장 수면에 돌입했던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냥 계속 광역버스를 잘 타고 다녔다. 


그렇게 3년간, 고등학교 시절처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새벽 첫 차를 타고 출퇴근했다. 


이후 판교에 있던 회사는 덩치를 키우며 강남에 확장 진출을 했고, 강남에 이사를 오니 조금 더 늦게 나가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조금만 늦어도 확 늦는 게 인천사람인지라. 나는 그대로 첫차를 타고 다니며 대신 강남에서 출근 전에 요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건강도 챙기고 지각도 안 하고. 일석이조의 삶이었다. 좋았다.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서른 살까지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며, 알람 없이도 일어나 출근하던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그 패턴이 확 바뀌면서 전에 비해 유래 없이 게으른(?) 삶을 살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른해진 느낌.


프리랜서로 재택 생활을 한 게 변화의 큰 곡점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하니, 배우자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게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같이 눈 감고 같이 눈 뜨는 게 주는 소소한 행복감이 있었다. 배우자는 아침잠이 몹시 많은 사람이라서 그걸 지켜보던 나도 덩달아 잠이 늘었고 그렇게 네시 반이 아닌, 여덟 시 반에 일어나는 삶을 2년 가까이 살게 되었다. 


고작 2년간 그렇게 살았을 뿐인데. 

내가 이전에 10여 년간 체득해 온 새벽의 삶이 이렇게 까마득히 잊힐 줄이야. 이건 좀 충격이었다.

그리고 더 충격인 것은 아침잠의 유혹을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잠을 참 잘 자.

잠이 그렇게 좋나? 잠을 세상 맛있게 자는 사람은 처음 본다 진짜. 그걸 지켜봐서 그런가. 

아니면 내 체력이 훅 떨어진 건가. 도무지 새벽에 일어날 생각을, 내 몸이, 하지 못한다. 


그렇게 2년쯤 나태한 아침잠을 즐기고 3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

아침잠이 달콤한 만큼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져서 위기감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은데, 그것보다 잠을 택하는 것 같아서 그것도 나름의 걱정이기도 했고.

뇌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그립기도 했고. 


아무튼 잠으로 채우는 아침 시간이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슬슬 새벽형 인간의 삶을 되돌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은 아니고 한 시간 빨리 일어났다. 허헣. 사람이 빨리 바뀌면 또 뒤숭숭해지니까... 

냅다 새벽 네시 반에 알람을 맞추면 알람을 듣자마자 내 몸이 아우 됐어, 적당히 좀 해. 아직 해도 안 떴어. 

하면서 냅다 포기할 것 같아서. 조금씩 시간을 당기며 나를 일으켜 세울 예정이다. 


때문에 오늘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평온한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해 봤다. 

이제부터는 다시 아침잠을 줄여 소중한 아침시간을 보내 볼 생각이다.

보람차고, 쓰임새 있게. 


다짐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글 쓰기. 

다시 새벽으로. 굳세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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