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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르기니 Yurgini Nov 21. 2024

평온한 일기

타이탄의 도구들

근래의 삶은, 돌이켜보면 뭔가 찝찌입-하고 엉킨 느낌이 가득했었다. 

이런 느낌이 왜 드는 것일까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전에 없이 들던 느긋한 태도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 느긋한 상황에서 느긋한 태도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 즉, 스퍼트를 올려야 할 때도 느긋한 태도(사실은 뒤쳐질 정도로 나른한)로 일관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역시 나는 사회적인 사람인지라. 

변한 환경과 관계의 영향을 아무래도 깊이 받아들였고 때문에 갈변한 것이겠지. 




결혼을 하며 업이 바뀌었고, 업을 바꾸며 전일 재택 상황이 되었다. 

집 안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되었고, 외출이 이벤트가 될 정도로 드물어졌다. 


그 사이에 삶도 바뀌었는데, 오랫동안 살 보금자리를 찾았고 결혼한 지 3년쯤 되며 아이도 갖기로 결심했다. 안정적인 것, 삶이 송두리 째 변할 수도 있는 무언가 생겼다는 생각에 내 목표를 잊고 있었다. 

계획을 세우며 목표를 이루던 삶이었는데 그걸 잊고 살았다. 


안정과 행복이 주는 평온함에 시나브로 젖어들어 아침잠도 늘고, 살도 찌고, 머리가 느슨해지고, 머리도 빠지는 것 같고(?) 노력은 좀만 천천히, 조금만 더 더 더 쉬었다가, 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뒤에? 언젠가? 미래의 내가? 그런 생각으로 뻗대고 일관하더니 이젠 노력을 찾기 힘든 사람이 된 그런 느낌. 


그런 삶에 태연했다면 금방 적응했을 텐데 나는 성과에 질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 그런 상황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찝찝했다는 게 정확하다. 노는 것도 잘 노는 사람이 해야지, 그게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하면 영 꽝인 거다. 그렇게 현재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 당도한 문제   

임신을 준비하고, 메인 작가님의 편성을 기다리며 막연히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일이 없는 상황

고립무원의 재택러가 되어 게을러진 몸뚱이

시간을 확인하며 살지 않게 된 것

순간순간의 즐거움, 사소한 일상과 사건에 관심을 갖고 집중력을 쏟아 도파민을 허비한 것

개인 목표를 잊고 타인에 의해 주도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사람이 늘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외향적이고 활발한 사람이 고립 상황에서 맞닥뜨린 꽤 크나큰 시련이었다. 


어영부영 나를 우선시하지 않았던 3년이 흘러 그 순간들은 하루하루가 모두 후회의 씨앗이 되었다. 

그때를 더 잘 보냈어야지, 그때 더 뭔가 했어야지, 왜 그때 그렇게 흘려보냈니. 

그땐 뭐 하고 지금의 모습이 맘에 드니? 


긍정을 지우고 심란한 기운이 들어차며 후회 없던 사람이 후회를 배운 3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 있다가는 몸도 꼬이고, 생각도 더디고, 이 후회스러운 일상이 나를 늪처럼 삼켜 점점 더 세상과 멀어지게 할 것 같아서 다시 시작했다. 어느 서점의 일일 글쓰기를 신청했고, 한동안 읽지 않았던 자기 계발서도 펼쳐보고, 아침 명상도, 아침 차 마시기도 다시 시작했다. 느슨한 주름이 된 뇌를 빽빽하게 채우고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여야 내 상황을 바꿀 수 있으니까. 마냥 기다려서야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지 않는다.  

기회는 갈구하는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는 법. 치열함을 되찾아 보기로 했다. 

이미 깃든 습관이 무섭지만 더 늘어지면 더 답답한 내일만 있을 걸 알기에 새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이럴 땐 이미 같은 고민을 했던 타인의 생각들을 접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 어젯밤엔 책장을 보며 필요한 책을 찾았다. [타이탄의 도구들]은 오래전에 중고서점에서 겸사겸사 사둔 책인데 있으면 언젠가 펼쳐보긴 하겠지… 란 마음으로 사뒀다가 어제 눈에 들어와 읽기 시작했다. 앞부분을 조금 읽었는데 꽤나 도움 되는 것들이 있어 오늘 아침부터 해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몇 가지를 행동을 12월 31일까지 꾸준히 따라 해보면서 헌 습관은 버리고 새 습관을 들여볼 생각이다. 


올해 남은 시간 동안 내가 가진 도구를 살피고 벼리며 기회를 벼를 것이다. 

다지고, 촉을 세우고, 움직여 내년부터의 일상은 지나온 일상들과는 다르길 바란다.


대들보 같은 생각을 가지며, 

평온한 일기 쓰기로 오늘 하루도 가열차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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