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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Jan 03. 2019

펭귄의 길을 따라가다

2018년 12월 28일. 캠프일기

번식기의 펭귄들은 바쁘다. 새끼들은 자랄수록 더 많은 먹이를 원하고 어미들은 쉬지 않고 바다를 오가며 먹이를 구해왔다. 번식지 앞 해빙에는 날마다 수천마리의 펭귄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바다로 나가는 펭귄들은 마음이 급한지 뛰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대열을 이뤄 바다로 나가는 펭귄들은 그냥 보기에도 마음이 급해보였다. 돌아오는 펭귄들도 급한건 마찬가지지만 뱃속에 가득찬 먹이 때문인지 나가는 펭귄보다는 발걸음이 더뎠다. 오가며 지친 펭귄들은 해빙이 녹아 생긴 웅덩이에서 몸을 씻기도하고 눈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눈이 쌓인 곳에서는 목마른 펭귄들이 허겁지겁 눈을 삼켰다. 

수많은 펭귄들이 먹이를 구하러 해빙을 건너 바다를 오간다. 
목마른 펭귄이 눈을 먹고 있다.
해빙이 녹아 생긴 웅덩이에서 펭귄들이 몸을 씻고 물장난을 치고 있다.

펭귄들은 걸어서 얼마나 나가야할까. 

인익스섬은 섬 바로 앞이 바다여서 펭귄들이 바다를 오가기 쉽다. 그러나 이곳 케이프할렛은 해빙의 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나가야 할까. 서강사님이 드론을 날려 3km앞까지 보내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여유가 생긴 우리는 직접 해빙의 끝을 향해 가보기로했다. 펭귄들의 길을 따라 펭귄의 여정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해빙 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펭귄들이 오가고 있었다. 펭귄들의 뒤를 따라 해빙의 끝을 향해 걸었다. 눈에 빠지기도 하고 겉이 녹아 미끄럽기도 한 해빙을 한시간쯤 걷자 빙하들이 솟아오른 지역이 나왔다. 좋지 않은 길 때문인지 펭귄들도 일정한 곳으로만 이동하고 그곳은 펭귄고속도로(Penguin highway)가 생겨 있었다. 

펭귄고속도로(Penguin Highway)


펭귄이 다져 놓은 그 길로 가면 편하겠지만 사람이 밟고 난 후 패인 곳은 펭귄에게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조금 힘들지만 펭귄의 길은 가능한 밟지 않고 이동했다. 마음이 급한 펭귄들은 우리를 앞질러 나아갔다. 그 작은 발로 지치지도 않는 듯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펭귄들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직선으로 4키로 가량 가봤지만 여전히 해빙의 끝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남극의 풍경을 배경으로 펭귄들과 함께 였지만 푹푹 빠지는 길을 세시간 가까이 걷다보니 힘이 빠지고 배가 고팠다. 아무래도 해빙의 끝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같이간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펭귄의 길을 걸으니 펭귄들이 더 대단하게 생각됐다. 


어미 펭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새끼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강한 바람에 얼어 죽었다. 많은 둥지 만큼이나 많은 새끼의 주검들이 번식지 곳곳에 나뒹굴었다. 올해는 해빙 끝까지 너무 멀고 바다의 먹이 상황도 예년에 비해 좋지 않은 모양이다. 펭귄의 행동을 연구하는 이박사도 로거를 매달아 바다로 보낸 펭귄 중 몇마리가 돌아오지 않아 마음 고생중이다. 돌아오지 않은 펭귄들은 아마도 바다에 나가 사고를 당했거나 알 수 없는 이유지만 둥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새끼는 이미 대부분 죽었다. 남극에 적응해 살고 있는 동물에게도 남극의 혹독한 환경은 여전히 극복의 대상이다. 돌아오지 않는 펭귄을 찾으러 이박사와 용수는 매일 여러번 번식지를 오갔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기를..낮은 가능성이지만 그들은 매일 희망을 품고 캠프지를 나섰다. 오늘따라 펭귄들의 삶이 마음에 닿고 애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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