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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맹자》를 읽어야 하는가?

by 나단 Nathan 조형권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유독 힘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주변의 말과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과 시선은 좋게 이야기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참견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신경 쓰다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잃게 되고 자칫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서울집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김부장이 퇴직 후 무리하게 상가 부동산에 투자하다가 사기를 당한 것도 결국 주변의 사람들에게 밑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자식뿐만 아니라 전에 직장 선배, 후배에게 여전히 존경을 받고 싶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살면서 어떻게 해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인생의 가치를 찾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답은《맹자》의 사상에서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맹자. 그는 공자의 손자 자사의 학통을 이어받은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맹자가 주장한 이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공자의 사상을 물려받고,‘성선설’,‘부동심’,‘호연지기’를 주창한 사상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죠. 오히려 ‘맹모삼천지교’로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가 수많은 학부모들에게 더 각광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을 우리의 삶에 녹여낸다면, 팍팍한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사상을 물려받고 발전시킨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유독 맹자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공자의 사상을 자신만의 형식으로 체계화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누구나 노력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만의 식견을 제시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공자의 사상인‘인仁’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도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맹자의 학문의 뿌리에‘효’와‘교육’이 있다는 점도 공자의 철학과 유사합니다. 맹자는 효가 근본이고, 교육을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주문했습니다. 또한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도 주장했습니다.


맹자의 사상이 더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때는 춘추말기를 넘어선 전국(戰國) 시대였습니다. 전국은 말 그대로 전쟁을 하는 국가라는 의미로 전국 칠웅이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 부국강병을 추구했습니다. 무력도 필요했지만 각 국가마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으며 위정자는 많은 사상가들을 맞이해서 의견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학파와 학자를 제자백가라고 합니다. 제자(諸子)는 여러 학자를, 백가(百家)는 수많은 학파를 뜻합니다.


맹자는 뛰어난 두뇌 집단을 형성해서 전국시대 군주들에게 유세했습니다. 일종의 지식탱크 역할을 한 것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도 잘했습니다. 좀 더‘센 공자’였습니다. 그가 뱉어내는 ‘독설’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롭고, 때로는 손뼉을 치고 웃게 만듭니다. 아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통쾌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공자가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공자는 아무리 제후가 못나더라도 교화시키려고 했지만, 맹자는 정말로 왕으로서 자격이 없다면 교체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주장했습니다.〈양혜왕 하〉편에서 제나라 선왕에게 “악행을 저지른 군주라면 평범한 사내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왕뿐만 아니라 주변의 신하들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갈이었습니다. 일종의‘역성혁명’이었습니다.《맹자》가 오랫동안‘금서’가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군주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


《맹자》의 첫 편에 등장하는 양 혜왕(위나라 제후)이 자신의 국가에 백성들이 늘지 않음을 걱정하자, 그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넌지시 비꼬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그 유명한 ‘오십보백보’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즉, 오십 보 도망가는 병사나 백보를 도망가는 병사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왕이 나라를 제대로 못 다스린다면 더 혹독하게 다스리는 왕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의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맹자도 공자와 마찬가지로‘인’의 정신을 받들어 임금이 백성을 위하고, 백성도 임금을 위하는 시대를 꿈꿨습니다. 거기에 ‘의’라는 정신을 추가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의리’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고, 일종의‘공정함’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그는 백성들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것이 기본이고 그래야 사회질서가 유지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를 ‘항산(恒産)’이라고 했고, 이를 통해서 일정한 생산을 보장해 줘야 ‘항심(恒心)’, 한결같은 마음, 곧 마음의 여유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결국 맹자는〈양혜왕 상〉편에서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 백성들이 굶지 않고 춥지 않게 하고서도 왕 노릇 하지 못했던 사람은 이제까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맹자는 백성들이 편안해야 비로써 ‘선한 마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을 측은해하는 마음인 ‘측은지심’,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 물러나고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마음인 ‘시비지심’인 사단(四端) 즉 네 가지 마음의 실마리를 주장했습니다(여기에서 단(端)은 실마리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마음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단서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역풍에 맞서는 호연지기와 부동심


맹자가 주창한 ‘호연지기’(浩然之氣)와‘부동심’(不動心)도 중요합니다.‘호연지기’는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 없는 용기, 바르고 큰마음’이고,‘부동심’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는 당시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서 떳떳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제자 공손추가 “정치에 참여하다 보면 현실에 타협해서 이상적인 정치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습니다.


맹자는 공자보다 더 현실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했고, 왕도(王道)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왕도정치는 덕(德)에 의한 정치입니다. 왕도정치는 덕치(德治)라고도 표현되며, 백성을 사랑하는 인(仁)에 기반합니다. 이를 통해서 백성과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군주,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맹자는 주장했습니다.


맹자는 평생 동안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와 그의 제자들은 강력한 두뇌집단 역할을 하면서 이후 유교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은 권력과 위세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대장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예전보다 더 복잡해졌고, 유혹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습니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서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결성으로 인해서 우리는 남들의 시선에 더 얽매이고, 나의 중심을 쉽게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연지기를 가진 대장부의 마음으로 살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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