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기

접근성과 투명성

by 박혜선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FA 살롱의 입구는 지나다가 내부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누군가를 일부러 초대하지 않아도, 지나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하는 공간(inviting space)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아는 사람이 안에 있는 모습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상태, 그 자체가 공간의 역할이라는 판단이었다.

다가가기란 무엇인가

낯선 공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문은 열려 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머뭇거리는 순간. 안에는 어떤 상황이고 그곳에 누가 있는지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대개 망설인 뒤 조용히 그 공간을 지나친다. 커뮤니티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들어가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상태가 만들어졌는가이다. ‘다가가기’는 문을 넘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문 앞에서 이미 시작되는 감각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많은 커뮤니티 공간이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 공간에 어떻게 첫발을 들이게 되는가하는 문제를 간과하곤 한다. 다가가기는 공간이 먼저 보내는 신호다. 이곳에 들어와도 괜찮다는 것, 당신은 ‘배제되지 않는다’는 말없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말이 아니라 공간의 형태와 위치, 그리고 어떻게 보이는가를 통해 전달된다.


길에서 얼마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지,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밖에서도 알 수 있는지,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가도 부담이 없는지. 이 모든 조건이 모여 ‘다가가기 쉬운 공간’을 만든다. 특히 동네 커뮤니티 공간에서 다가가기는 더욱 중요하다. 이곳의 이용자는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처음 이사 온 사람, 혼자 방문하는 사람, 아이를 데리고 나온 보호자, 몸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까지 이들에게 다가가기는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공간)환경의 문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다가가기‘접근성’과 ‘투명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으로 설명된다. ‘접근성’이란, 일부러 어렵게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일상의 동선 위에 있고, 계단이나 문턱에서 막히지 않으며,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들를 수 있는 위치에 놓이는 것. ‘투명성’이란, 안과 밖이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다.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관계가 시작되는 상태를 말한다.


다가가기는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공간 설계이자, 한편 정치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누구를 먼저 맞이할 것인가, 누구를 배제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어떤 공간에는 쉽게 다가가고, 어떤 공간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는지를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층 카페라는 선택 : 깃사란드리,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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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건물의 1층에 위치한 깃사란드리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일까, 운영 주체일까, 아니면 건축적 완성도일까. 여러 사례를 살펴보며 발견하게 되는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혼자일 때, 처음 방문할 때, 유모차를 끌고 왔을 때, 몸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공간 앞에서 한 번 더 멈춘다.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공간일수록 이 첫 문턱은 더 낮아야 한다. 깃사란드리는 이 ‘문턱’을 건물의 1층, 그라운드레벨에서 해결한 사례다.


깃사란드리는 도쿄 스미다구의 시타마치(下町) 주거 지역에 위치한 세탁카페다. 이곳은 대규모 상업지나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된 주택과 소규모 상점, 주민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골목으로 이루어진 동네다. 이름 그대로 차를 마신다는 ‘깃사(喫茶)’와 세탁이란 의미의 ‘란드리(Laundry)’를 결합한 공간으로, 세탁기와 건조기, 다리미와 재봉틀이 있고, 그 옆에는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운영 주체인 그라운드레벨(Ground Level)은 이 공간을 “마을의 가사실이 있는 현대판 다방”이라고 설명한다.


이 카페가 들어선 곳은 오픈 당시 55년 된 4층짜리 노후 건물이고, 대로변이 아닌 주택가 안쪽 2차선 도로에 면해 있었다. 리노베이션 이전에는 장갑을 포장하는 작업장이 있던 곳으로, 상업적으로 눈에 띄는 입지도 아니었다. 이 작은 1층 카페는 오픈 후 예상보다 빠르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운영 초기였음에도 단체 방문 예약하기는 쉽지 않았고, 현장 답사에는 적잖은 비용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직접 보고 싶었던 이유는 분명했다. 세탁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머무르는 것과 같은 원래는 집 안이나 실내에 머물렀을 일상이 거리와 바로 맞닿은 공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적인 생활의 장면이 가려지지 않은 채 드러날 때, 공간은 비로소 동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다.


여러 도시를 다니며 동네 커뮤니티의 거점이 된 공간들을 살펴볼수록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와 맞닿은 1층에서, 밖으로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깃사란드리를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박수와 한숨이 함께 나왔다. 아주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커뮤니티 공간은 1층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보다 더 분명하게 구현된 사례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그토록 명확하다고 믿었던 내 생각을 이미 이 공간이 먼저 실천하고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다니 말이다.


이용자의 접근성은 가로에 직접 면해 열린 1층에서 극대화된다. 커뮤니티의 기본이 안과 밖의 소통이라면, 공간은 최소한 투명한 창을 통해 내부가 보이고, 바깥의 풍경 또한 안으로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깃사란드리는 바로 이 지점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라운드레벨의 다나카 대표는 코펜하겐의 란드리카페(Laundry Cafe)를 방문한 경험을 계기로, 커뮤니티는 계획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기처럼 피어오르듯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연기가 가장 잘 피어오르는 위치가 바로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1층, 즉 그라운드레벨이라고 본 것이다.


깃사란드리는 이 생각을 공간으로 구현했다. 가로에 면한 1층에 위치한 출입구는 크고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거리에서도 안쪽의 풍경이 바로 보인다. 세탁을 하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잠시 쉬어 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밖에서는 그 장면을 스치듯 바라보며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눈다. 이 투명성은 단순한 개방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용하지 않아도 괜찮고, 들어가지 않아도 연결되는 상태를 만든다. 지나가다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이미 동네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이것이 ‘접근성’과 ‘투명성’이 결합될 때 나타나는 효과다.


깃사란드리 사인이나 홈페이지의 상호명 위에 걸려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편히 쉬기(どんなひとにも自由なくつろぎ).” 란 문구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공간의 사용 방식을 설명한다. 0세부터 100세까지, 이용자와 비이용자 모두가 배제되지 않는 1층의 공간. 다나카 대표는 이를 ‘사설 공민관*’이라고 부른다. 이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도 특별하지 않다. 유모차를 끄는 한 어머니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1년이 지나도록 친구를 한 명도 만들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였다. 유모차 때문에 대부분의 카페에 들어갈 수 없었고,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1층 편의점뿐이었다. 깃사란드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유모차 때문에, 낯설어서, 혹은 혼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일상이 이어지지 못하는 순간을 개인의 선택이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설계의 문제로 전환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현재 깃사란드리는 도쿄 모리시타 본점을 포함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역 앞 단지의 1층, 피트니스클럽의 1층 등 장소는 달라졌지만 조건은 같다. 사람들이 매일 지나치는 동선에 면해 있고,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위치일 것 등이다.


깃사란드리는 말해준다. 커뮤니티 공간의 시작은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자리는 대부분, 여전히 1층, 그라운드레벨에 있다.


*공민관은 일본 지방자치단체(시·구·정·촌)가 설치·운영하는 지역 기반의 공공 커뮤니티 시설로, 「사회교육법」에 근거한 공공 교육·문화 공간이다. 동네 가까이에 위치하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공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일상적 학습과 주민 관계 형성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이다.

IMG_5820.jpg 거리와 맞닿은 1층에서, 밖으로 열린 공간을 만든 깃사란드리




상점가에 열린 고령자 살롱: 에후에이살롱,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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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상점가 내에 위치한 에후에이살롱

도쿄의 깃사란드리가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일상의 공간에서 접근성과 투명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면, 에후에이(FA)살롱은 같은 질문을 고령자의 일상 동선 속에서 던지고 있다. 고령자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하면 보통 조용한 주택가 안쪽이나 복지시설이 모여 있는 공공건물이나 아파트단지 내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장소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치와 다를 때가 많다.


에후에이살롱은 오사카 아베노구(阿部野區)의 왕자상점가(王子商店街)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상점가에는 장을 보러 가는 사람, 산책을 하는 사람, 잠시 비를 피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에후에이살롱은 바로 이러한 일상의 흐름 위에 놓인 고령자 살롱이다. 이 살롱을 운영하는 주체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이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와야 하는 시설이 아니었다. 주거지 안쪽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대로변은 고령자에게 위험하여 부담스럽다. 상점가는 그 사이에 놓인 장소다. 자동차의 위협 없이 걸을 수 있고, 아케이드 아래에서 안정적인 보행 환경이 유지된다. 무엇보다,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발검을을 멈출 이유가 있는 장소다.


상점가에 면한 에후에이살롱의 입구는 목재 프레임과 유리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상점가를 지나다가도 내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이 유리문에 대해 이용자들이 다소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설계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주고, 망설임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이 공간을 설계한 로쿠하라 마고토* 건축가는 고령자들이 폐쇄적인 공간에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에후에이살롱의 입구는 지나다가 내부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누군가를 일부러 초대하지 않아도, 지나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하는 공간(inviting space)'**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아는 사람이 안에 있는 모습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상태, 그 자체가 공간의 역할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설계는 고령자 커뮤니티 공간에서 특히 중요하다. 문이 닫혀 있고 안이 보이지 않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후에이살롱은 닫힌 공간에 머물러 있던 고령자의 일상을 상점가라는 열린 동선 위로 다시 끌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상점가를 걷다 보면, 안에서 누군가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누가 있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드러남(Visibility)’, 다시 말해 안이 읽히는 상태는 고령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닫힌 문 앞에서 망설이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소처럼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입구 옆에는 에후에이살롱의 활동을 설명하는 그림 간판이 걸려 있다. 글을 읽지 않아도 어떤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작은 포치(porch)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멈췄다가 들어가기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작은 장치들이 모여, 이곳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 자연스럽게 놓인 생활공간으로 인식된다.


에후에이살롱의 또 다른 특징은 안과 밖이 서로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에 있는 사람은 밖을 지나가는 이들을 보고, 밖에 있는 사람은 안의 분위기를 살핀다. 눈인사가 오가고, 아는 얼굴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문을 연다. 계획된 프로그램이 없어도, 이 시선의 교차만으로 관계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다가가기’란,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다. 지나가도 되고, 들여다봐도 되고, 들어와도 괜찮은 상태. 상점가라는 위치, 1층이라는 조건, 그리고 투명한 입구는 모두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한 환경이다.


에후에이살롱은 고령자를 위한 공간이지만, 고령자만의 공간은 아니다. 상점가를 지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래서 오히려 고령자들이 고립되지 않는다. 이 살롱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들의 일상 동선 위에 있으면서 그 일상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가기는 설득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에후에이살롱은 그 사실을 상점가 한복판에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로쿠하라 마고토 건축연구실(六波羅真建築研究室)의 대표. 나가야, 마치야 등 일본의 전통주택의 리노베이션을 중심으로 건축활동을 하는 건축가이다.

**초대된 공간은 시민이 공공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착수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만든 제도적, 법적, 조직적, 정치적, 정책적 공간을 말한다.

829.jpg 입구가 유리문으로 되어 내부가 잘 보이는 에후에이살롱




마당으로 완성된 고차마제: B’s·교젠지, 이시카와

교젠지전경.jpg B's 교젠지의 전경

B’s·교젠지는 2016년 완공된 시설로, 사회복지법인 불자원(Buiss-EN)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법인의 모태는 사찰 ‘교젠지(行善寺)’이며, 불교 재단이 설립 주체라는 점에서 이 공간은 종교적 배경과 복지적 실천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만으로 이곳을 종교 시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교젠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교적 개념 중 하나는 『법화경』에 등장하는 삼초이목(三草二木)이다. 이는 크고 작은 풀과 나무가 같은 비를 맞고 자라듯, 서로 다른 조건과 배경을 지닌 존재들 또한 동등하게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교젠지는 이 사상을 교리로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먼저 복지 실천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 기본 원칙은 장애의 유무나 건강 상태, 어른과 아이,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데 있다. 이후 이 사상은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교젠지는 삼초이목의 개념을 공간 구조로 드러내고자 했다. B’s·교젠지는 이로써 특정 집단을 위한 복지시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구분 없이 겹쳐지는 일상의 공간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키워드가 바로 ‘고차마제(ごちゃまぜ)’라 불리는 개념이다. 운영 주체는 이를 “누구도 분리되지 않고, 누구도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고차마제는 추상적인 이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간의 배치와 프로그램 구성, 서로 다른 이용자들의 동선이 겹치는 구조, 그리고 안과 밖에서 시선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B’s·교젠지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차이가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B’s·교젠지에서 말하는 ‘고차마제’는 사람을 섞거나 역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하되 그것이 공간을 사용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B’s·교젠지는 일본 이시가와현 하쿠산시의 주거지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농지 사이로 새 주택지가 패치워크처럼 펼쳐진, 전형적인 지방 도시의 풍경 속에 자리한 곳이다. 이곳은 단일한 복지시설이라기보다, 아이와 노인, 장애 유무, 일하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각자의 일상을 유지한 채 오가는 이용공간이자 생활의 공간에 가깝다. B’s·교젠지의 중심에는 큰 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당을 둘러싸고 보육원과 아동지원센터, 고령자 데이서비스, 장애인을 위한 취업지원 공간, 카페와 키친 스튜디오, 클리닉과 사무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어느 부분이 복지시설이고 어느 부분이 상업공간인지, 누가 직원이고 누가 이용자인지를 한눈에 구분하기 어렵다. 처음 방문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모호함이야말로 이 공간이 의도한 상태다.


마당에 서면 이곳의 거의 모든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커피를 마시며 쉬는 어른들, 일을 준비하는 장애인 직원들의 모습이 하나의 시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중요한 점은 이 장면들이 ‘보여도 괜찮은 일상’으로 계획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실내 공간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마당과 맞닿아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폴딩도어나 슬라이딩 도어를 열어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다. 이러한 투명성은 단순히 개방감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존재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조건’에 가깝다. 벽으로 닫힌 공간에서는 이런 관계가 쉽게 시작되기 어렵지만,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에서는 짧은 시선 교차나 한마디 인사가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마당 주변과 2층 테라스에는 보행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내부에 머무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 높이가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앉아서 머물 수 있고, 아이와 놀아주는 아버지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파파카페’에 다다른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공간 자체가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한다. 이곳에서의 ‘다가가기’는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초대하는 행위가 아니다. ‘보이고, 알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들어가도 괜찮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B’s·교젠지는 공유된 중심 공간인 마당을 통해 그러한 상태를 만들어 낸다. 접근성과 투명성은 경사로나 출입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시선의 구조’에 관한 문제다. 이곳의 마당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교젠지의 마당은 사람들을 섞는 공간이 아니라, 섞이지 않아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상태를 지속함으로써 ‘다가가기’를 환경의 문제로 다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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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 교젠지의 마당과 마당으로 열린 각 공간들


3-6_교젠지_평면도.jpg B's 교젠지의 평면 구성

사례를 통해서 본 다가가기

이 세 사례에서 ‘다가가기’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이는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먼저 말을 거는 상태를 만드는 일로 다루어진다.


깃사란드리는 카페를 1층에 두는 단순한 선택을 통해 들어가기 전의 망설임, 즉 문턱을 물리적으로 낮춘다. 다가가기는 ‘위치’에서 시작된다. 에후에이살롱은 상점가라는 일상의 흐름 속에 공간을 열어 지나가다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 자체를 다가가기의 첫 단계로 만든다. 여기서 다가가기는 ‘보임’과 ‘익숙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B’s·교젠지는 마당이라는 공유 중심 공간을 통해 머물지 않아도 이미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상태를 만든다. 다가가기는 더 이상 입구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같은 풍경을 이루도록 배치된 공간구성(layout)을 통해 완성된다.


이 세 사례는 공통적으로 다가가기를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환경과 공간구성(배치)의 문제로 전환한다. 문을 열 용기를 요구하지 않고, 역할을 정하지 않으며,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상태. 그 상태가 유지될 때, 다가가기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 장에서 ‘다가가기’는 입구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가 시작될 수 있는 상태를 디자인하는 일로 재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