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주기

오픈 공간

by 박혜선

열어주기란 무엇인가

'열어주기'란 사람들이 이미 공간 안에 들어와 있을 때, 그 상태가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문제다. 오픈 공간은 출입이 가능한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기척이 자연스럽게 인지되고, 각자의 목적과 속도가 존중되면서 머무르는 것이 허용될 때, 공간은 비로소 열린 상태로 작동하게 된다. 동네 커뮤니티공간에서 ‘열어주기’란 기능이나 프로그램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이후에도 역할이나 참여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적 조건을 마련하는 일에 가깝다. 또한 낯선 이에게도 이곳이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임을 전하는 디자인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앞선 ‘다가가기’가 공간에 들어오기 전의 문턱을 다루고, ‘끌어들이기’가 들어온 이후 머무를 이유를 만들었다면, ‘열어주기’는 그 두 단계를 관통하며 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조건을 다룬다. 누구나 목적 없이 들를 수 있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머물러도 되는 공간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낮추고, 관계가 생겨날 여지를 남긴다. “여기는 열려 있다”, “잠시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전달될 때, 공간은 개인의 일상과 동네의 흐름을 잇는 매개가 될 수 있다.


동네 커뮤니티공간에서 ‘열어주기’는 환대의 제스처이자, 공동체를 확장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다. 이 장에서 살펴볼 두 사례는, 오픈 공간이 어떻게 세대와 배경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만남을 지속 가능한 관계로 전환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동네사람들의 열린 거실: 다세대교류센터 잘즈기터, 독일

투명한 파사드와 카페형 공용공간, 야외 공간의 연속을 통해 내부의 일상이 외부로 이어진다.


독일 니더작센주 잘츠기터에 위치한 다세대교류센터(Mehrgenerationenhaus Salzgitter)는 이름 그대로 여러 세대가 함께 사용하는 동네의 거실과 같은 공간이다. 이곳은 특정 연령층이나 집단을 위한 복지시설이라기보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생활공간을 지향한다. ‘열어주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공간의 핵심은 무엇을 제공하느냐보다 어떻게 열려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가에 있다.

건물은 거리에서 진입한 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낮은 문턱과 투명한 입면을 갖고 있다. 외부에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구조 덕분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이곳에서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의 풍경이 외부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시각적 개방성은 ‘들어가도 괜찮을까’라는 망설임을 줄이고, 공간을 동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킨다.

실내 공간은 특정 프로그램실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거실처럼 느껴지는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앉아 머물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 공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도 이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허용되며. 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이곳을 열린 거실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조건이다.

실제 공간의 풍경을 보면, 이곳이 특정 이용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장애가 있는 사람, 이주민으로 보이는 방문객,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인근에 거주하는 노년층, 젊은 세대가 같은 시간대에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이들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거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머문다.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에서 세대 간 교류는 기획된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지기보다, 공간의 개방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 근처에 사는 노인, 잠시 들른 이웃이 같은 공간에 머무르며 시선을 나누고, 가벼운 인사와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이곳은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참여를 설득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 관계의 가능성이 열리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사례는 ‘열어주기’가 단순히 문을 활짝 여는 행위가 아님을 보여준다. 내부의 활동이 외부로 드러나고, 외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부로 스며들며, 안과 밖의 경계가 완전히 닫히지 않을 때 공간은 비로소 동네의 일부가 된다.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의 오픈공간은 특정 역할을 요구하지 않고도 누구나 머물 수 있는 동네의 공동 거실에 가까운 상태를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 사례를 보면, ‘열어주기’는 세 가지 공간적 조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부의 활동과 분위기가 외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시각적 개방성이다. 둘째, 특정 프로그램이나 역할이 없어도 머물 수 있는 공통의 중심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셋째, 참여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적 구조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작동할 때, 오픈공간은 일시적인 개방 상태를 넘어 동네의 일상 속에서 지속되는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관계는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즉각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중앙의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배치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와 목적에 따라 머물며,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이러한 공존의 경험이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오픈공간은 일시적으로 열려 있는 장소를 넘어 동네의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머무는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의 일상 풍경.
잘즈기터 다세대교류센터의 1층 평면도. 가운데 열린 카페, 일린 거실이 핵심 공간이다




일상으로 열리는 동네 공간: B’s·교젠지, 이시카와

사찰의 정문이면서 B’s교젠지의 진입부, 동네 사람들의 애용하는 B’s교젠지 온천 입구


앞선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가 ‘동네 거실’이라는 이미지로 열린 공간을 보여주었다면, 이시카와현 하쿠산시에 위치한 B’s·교젠지는 먹고 씻는 일상 행위를 통해 공간을 연다. 이곳은 사찰과 연결된 복지시설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처음 공간을 마주하는 방문자에게 그 정체성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온천을 이용하고, 식사를 하거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이 먼저 보인다.


이 공간의 중심에는 식당과 온천을 중심으로 한 공용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식당은 복지시설에 부속된 기능이 아니라, 동네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식당으로 운영된다. 온천 역시 특정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목욕 공간이며 게다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방문자에게 ‘이곳이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라는 질문을 멈추게 한다. 먹고 씻는 행위는 연령이나 장애, 역할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공간구성 역시 이러한 개방성을 강화한다. 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기능이 느슨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 공간들은 유리문과 개방된 동선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연결된다. 식사를 마친 사람, 온천을 이용한 사람, 마당을 가로지르는 아이와 노인이 같은 풍경 안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들이 특별히 연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여주기 위한 개방’이 아니라,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가 유지된다.

B’s·교젠지에서 ‘열어주기’는 적극적인 초대나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익숙한 행위가 공간의 중심에 놓이면서, 결과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장소를 공유하게 된다. 잘츠기터가 머무름을 통해 관계를 열어주었다면, 교젠지는 먹고 씻는 일상 그 자체를 통해 공간을 열어준다. 이곳에서 열린 공간이란, 복지와 종교라는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동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B’s·교젠지 사례를 통해 볼 때, ‘열어주기’는 또 다른 공간 배치 원리로 확장된다. 첫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기능을 공간의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진입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둘째, 중심 마당을 통해 서로 다른 기능들이 느슨하게 연결되며, 섞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열린 상태를 유지한다. 셋째, 복지시설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공간을 특정 이용자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동네의 일상 공간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이처럼 교젠지의 ‘열어주기’는 형태적 개방이 아니라, 배치와 프로그램의 선택을 통해 완성된다.

온천 앞에 위치한 열린 식당




사례를 통해 본 열어주기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와 B’s·교젠지는 서로 다른 맥락과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열어주기’라는 공간디자인 키워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잘츠기터 다세대교류센터가 ‘동네 거실’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머무름 중심의 오픈공간을 만들어냈다면, 교젠지는 ‘동네 식당과 온천’이라는 보다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공간을 연다.


잘츠기터의 열어주기는 투명한 파사드와 낮은 문턱을 통해 내부의 일상을 거리로 드러내고, 목적 없이도 머물 수 있는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곳에서 관계는 기획된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기보다,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겹치며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열어주기’는 적극적인 초대가 아니라, 머물어도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반면 교젠지의 열어주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 기능을 전면에 배치하는 데서 출발한다. 식당과 온천은 공간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며, 마당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배치는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존재를 인식하게 만든다. 복지시설로서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공간은 동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기서 열린 공간(오픈 공간)이란, 내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라기보다 일상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배치에 가깝다.


이 두 사례를 통해 보면, ‘열어주기’는 하나의 형태나 해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 투명한 파사드와 공용 거실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고, 먹고 씻는 일상 행위를 중심에 두는 프로그램 배치를 통해 완성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역할이나 참여를 요구받지 않은 채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있도록 만드는 공간적 조건이 유지되는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열어주기’란 문을 여는 행위가 아니라, 동네의 일상 속에서 공간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머물 수 있도록 계획된 배치와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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