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인한 비극은 우연일까, 아니면 신의 계획인 운명일까. 타이타닉을 비롯해 수많은 재난 서사의 원형이 되었다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이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우리는 해마다 뜻하지 않은 재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목도하죠. 찰나의 차이로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 우리는 위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이 궁금증을 품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기념비 적인 사고와 저는 제법 관계가 있었답니다. 어이없이 폭싹 주저앉은 삼풍백화점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입사한 광고 회사의 광고주였습니다. 옆팀에서 담당을 했는데 사고가 났던 날, 막 미팅을 끝내고 돌아온 선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앞다투어 내뱉던 말들이 떠오르네요. ‘ 야 , 우리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저기에 그냥 깔리는 거야’ ‘하늘이 도왔어’ ‘까닥하면 죽을 뻔했다’... 무심코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던 저는 고개를 들어 파트션 너머의 상기된 선배들의 얼굴을 훔쳐보았습니다. 안도와 걱정이 어린 오묘한 감정들이 뒤섞인 그들의 얼굴을요.
삼풍백화점 사건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고, 날마다 구조작업 현장이 생중계되었고, 생존자들이 발견될 때마다 온 국민을 눈물샘을 자극했죠. 저 또한 퇴근 후 새벽까지 현장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답니다. 구조 작업이 몇 날 며칠째 이어지던 어느 날 밤, 천둥과 번개가 시꺼먼 하늘을 가르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마치 돌더미 속에 갇힌 안타까운 죽음들의 한 맺힌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악몽에 시달렸는데 꿈속에서 비명 같은 천둥소리 속에 새어들던 울음소리와 함께 새까만 하늘을 맴돌던 희미한 불빛들이 보였죠. 알 수 없는 공포감과 비애감에 눈을 떴죠. 다음 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삼풍 백화점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선배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며 아침 인사를 했답니다. 살아남은 그들이 더 잘 살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의 계획은 그들을 살리는 것이었으니까요.
몇 달 후, 기암 할 사건이 또 생깁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이지죠. 그 당시 창동의 13평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던 저는, 강남에 위치한 저의 회사로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때 ‘카풀’이라는 사회적 무브먼트가 유행을 하면서, 회사에서도 가까운 동네에 사는 직원들과 카풀을 하자는 제안이 사내에서 공공연했죠. 가끔 늦은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같은 동네라며 종종 저를 태워주시던 기획팀 부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저를 보시더니 이제 아침에도 카풀로 같이 출근을 하자고 먼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 시달리던 저는 제법 어색하고 어려운 부장님과 나란히 앉아 출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부장님은 저의 우려와 달리 매우 자상한 분이셨으며, 신입 사원인 저에게 도움이 될 많은 이야기들을 그 문제의 성수대교를 건너면서 해주셨습니다. 강북의 끝자락인 창동에서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가다가 성수대교를 지나 강남에 있는 저희 회사로 출퇴근을 했으니까요. 저와 부장님은 다리가 무너지기 전 일주일 전부터 그 다리를 건너 매일 출근을 했습니다.
사고가 나던 날, 부장님은 광고주의 급 호출로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을 해야 했고, 저는 부장님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부장님의 차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된 것 택시를 타고 갈까 망설이다가, 가난한 신입 사원의 지갑을 떠올리며 묵묵히 지옥철에 올랐답니다. 그때 제가 만약 택시를 탔다면 저는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겠죠. 뿐만 아니라, 광고주가 부장님을 호출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소기업의 사장님이 되신 부장님도 마찬가지였겠죠. 붕괴 사고로 하루 종일 회사가 어수선하던 그날, 오후 두 시를 훌쩍 넘기고 회사로 돌아온 부장님은 제 자리로 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 야, 우리 오늘 같이 황천길 갈 뻔했다. 유난 떠는 그 광고주가 고마운 건 오늘이 처음이네.” 역시 신의 계획은 저와 부장님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상상하곤 한답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귀신이 되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의 꿈 속이라도 들어가서 괴롭혀주기를요… 음주 운전으로 생명을 앗아간 이들.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금쪽같은 한 젊은이의 꿈을 지워버린 이들. 그렇게는 보낼 수 없는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을 그렇게 보내게 만들고도 두 다리 쭉 뻗고 잘 먹고사는 이들… 이들의 꿈속에, 아니 일상 속에 수시로 등장해서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인을 보내주기를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들을 보는 것이 두렵고 죄송스럽겠지요. 그렇게라도 억울하게 주금이 된 그들에게 사죄하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귀신이 무섭지 않습니다. 가끔 심신이 힘이 들면 가위에 눌리다가 귀신을 보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면 순간 놀라다가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억울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제 꿈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마음으로 귀신을 보면, 제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금세 자취를 감춘답니다. 한 밤중에 만난 귀신이 무서울까요 사람이 무서울까요. 솔직히 저는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그런 세상이 되었네요. <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