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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기

by anego emi

며칠 전부터 스케치해 놓은 풍경에 색을 칠하다가, 캘리 키건이 최근 그녀의 책 속에 남긴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수신자의 이름만 다르고 내용은 똑같은 산더미 같은 편지를 쓰는 일이 삶이다’ 조금 섬뜩하기도 하고 쓸쓸한 이 구절이 가슴에 이리도 꽂히는 것은, 아마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깊은 공감 때문이겠지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섬 위에 상자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집들을, 페인트 칠을 하듯 아이 팬슬로 색을 입히다가, 몇 날 며칠 반복되는 이 행위가 작가의 말처럼 ‘내용은 똑같은 산더미 같은 편지 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단 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뿐이겠습니까. 매일 반복되는 이 일상도 다르지 않지요. 그래도 쓰지 않으면 편지는 부칠 수 없고, 부치지 못한 편지는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아쉬움’과 ‘ 그리움’ …두 가지 감정의 교차로 수신자를 향해 날마다 편지를 쓰는 것은 아닐는지요. 이왕이면 저는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지네요.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만은 또렷한 미래의 나를 향한 그리움으로요. <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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