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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

by anego emi

눈을 3분의 1쯤 덮은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 단골 미용실에 왔습니다. 제 머리를 해주는 선생님은 오늘 오프라 젊고 앳된 여자 선생님이 대신 잘라주기로 했죠. 조심조심 길이의 적당함을 물어가며 앞머리를 자르고, 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간단하게 볼륨업을 위해 드라이를 해주었습니다. 한결 가볍고 상쾌해진 기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저에게 그녀가 말했죠. “ 앞 머리가 희어요” 저는 반사적으로 듬성듬성 보이던 흰머리가 요즘 부쩍 늘었나 하는 생각을 했죠. ‘아하’ 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 저에게 그녀는 부드러운 솔로 제 얼굴에 붙은 작은 머리카락들을 털어내며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 앞머리가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져서 나 있어요. 드라이하실 때 반대쪽으로 살짝 밀면서 하시면 더 볼륨이 이쁘실 거예요” ‘아하’ 저는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피식하고 웃음을 났습니다. ‘휘다’를 ‘희다’로 잘못 들은 것이죠. 주변의 제 또래 지인들은 죄다 백발이 되어 염색의 늪에 빠져있고, 저 또한 최근 들어 점점 흰머리가 늘어나서, 이제는 족집게로 뽑을 수도 없게 되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오늘 아침에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면서, 이제 곧 염색의 늪에 빠지거나 백발마녀로 살거나 하는 기로에 서겠군 하고 생각을 했답니다. 가수이지 배우이자 라디오 DJ인 김창완 님이 자신의 에세이에서, 연식이 오래되어 고장 난 차를 고치러 갔더니 정비공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대충 고쳐서 쓰세요. 다 못 고쳐요. 오래돼서…” 그 순간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이런 게 자격지심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 또한 자격지심에 그녀의 말을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잘못 듣은 것이지요. 미용실을 나오면 한쪽으로 휘어진 앞머리를 반대쪽으로 몇 번 쓸면서 빙긋 미소를 짓어봅니다. 나이 들어가는 걸 당연한 척하면서도 마음이 종종 삐딱선을 타네요. (아네고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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