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무료해서 톡을 하면 톡대신 전화를 하는 후배가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 회사에서 한창 바쁠 때를 피해서 제법 긴 통화를 저와 이어가지요. 가벼운 안부와 근황을 묻다가, 제 대답이 무언가 탐탁지 않은 기미가 보이면 슬슬 그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핵심은 언제나 다음과 같습니다. ‘ 인생은 길다. 우리는 100살까지 산다. 모아놓은 돈이 20억쯤 되지 않는다면 일을 더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할 곳을 찾아야 한다. 너무 안일하게 대충 사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큰 일 난다 등등 ’ 구구절절 틀린 말도 아니고 다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전화를 끊고 나면 왠지 씁쓸해집니다. 그러가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 일까? 그와 내가 입장이 바뀐 것은…’ 제가 잔소리를 하던 처지에서 잔소리를 듣는 처지로 말이죠.
바야흐로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는데, 제가 막 대리로 승진하여 기세등등할 때였습니다. 일도 재미가 있었고 날고 기는 선배들의 오른팔 혹은 왼팔이 되어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틈틈이 그 당시 유행하던 PC 통신인 천리안에 접속해 최신 트렌드를 찾기도 하고, 채팅방을 만들어 소위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제가 채팅방을 만들면 꼭 들어와 사사건건 딴지를 걸며 분탕질을 하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강제 퇴장을 시키거나 새방을 만들어도 어떻게든 저를 찾아내서 그 방으로 들어왔죠. 그때마다 너무 재수가 없고 얄미웠는데,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보니 제법 재미있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답니다.
그 후로 제법 자주 그 녀석과 채팅을 했고, 결국에는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며 언젠가 한 번 얼굴 보자는 약속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몇 달 후, ‘언젠가 한 번’이 ‘현실’이 되어 제법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었죠. 저보다 두 살 아래 대학생인 그가 다니는 대학교와 우리 회사가 같은 동네에 있는지라, 종종 퇴근 후 근처에서 만나 술을 마시기도 하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학 때 기분을 내기도 했죠. 그다음 해에 저는 미국으로 갑작스러운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고, 인수인계와 유학준비로 바쁜 터라 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습니다. 2년 후에 돌아와 다시 취업을 하고 바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문뜩 그의 생각이 났습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의 유쾌한 농담과 시니컬한 말투가 그립기도 했죠.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짜도 그의 연락처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따로 메모를 해 놓지도 않았기에, 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날 며칠 야근을 하고 팀원들과 가볍게 맥주잔을 기울이다가 90년대 유행하던 음악이 흐르자 갑자기 그의 전화번호가 반짝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얼른 팬을 꺼내 냅킨 위에 그 번호를 빠르게 휘갈기고 가게 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를 들리자 너무 반가웠고, 이 번호를 용케 기억해 낸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그와 저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조그만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죠. 그는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지만 할 일도 없고 해서 다니는 것이라고 만날 때마다 푸념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그에게 말하곤 했죠. ‘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대충 그렇게 끼니 때우듯 살아서는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라. 대충 살면 후회한다. 등등 ’ 그렇게 매번 잔소리를 이어가던 제 덕분인지, 그는 저처럼 작은 광고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광고회사를 전전하며 우리는 각자의 경력을 쌓아가다가, 결국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어답니다. 물론, 저는 부장이자 팀장이었고 그는 대리지만 제작팀과 기획팀으로 만나서 나름의 시너지를 내며 여려 건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회사를 떠나 작가와 프리랜서의 삶을 택했지만, 그는 산전수전을 겪으며 회사에 남아 드디어 본부장이 되었습니다.
(아네고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