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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끌고 전철 탔다가 목적지 계단 앞에서 포기.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아시나요?

by 찐보아이

20개월 아기를 데리고 어디든 가고 싶었다.

그 즈음 찾아온 육아 우울감을 나 혼자 정신적으로 버티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

몸 움직이면서

좋은 데 가서

아기랑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것 구경하자는 생각이 짙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큰 마음을 먹고 신랑 차 아닌 대중교통으로

유모차 끌고 전철을 타볼 생각을 했다.

무조건 집 밖을 나가고, 또 멀리 가서 우울감을 떨치는 게 내 목표였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유모차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아기랑 이동해야 하고 과연 멀리까지 차 없이 잘 갈 수 있을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가보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아기랑 가려고 정한 곳은 잠실 롯데의 아쿠아리움!

규모도 굉장히 크고 넓은 곳이고

수족관 돌고래라도 좀 보면 마음이 좋아질 것 같았다.


당정역(1호선)----------> 잠실역 (2호선)
(잠실 롯데 아쿠아리움)


집에서 유모차 끌고 10분 걸으면 전철역이 있어서 출발지 역까지는 무사히 잘 도착하였고

막상 도착하니 자신감 뿜뿜이 되었다.


그런데

잠실역까지 가려면 두 번을 갈아타야 하는데 네이버 길 찾기에서 보니


KakaoTalk_20250914_185218385.jpg 유모차 끌고 가야 하는 나의 여정 (당정역--> 잠실역, 1시간 5분 거리)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고 착각했다.

네이버에는 1시간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해서 나는 곧이곧대로 그 시간을 믿었다.

(유모차 없이 갈아타는 사람의 기준이 1시간 5분이지 실제 계단 말고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찾는 시간, 등등을 계산했을 때 나는 2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예상해야 했다. )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유모차 끌고 처음 전철 타는데 나는 너무 처음부터 난코스를 택했다.

1호선으로 4호선, 4호선 그것도 붐비는 사당에서 2호선을 갈아탈 코스를 첫 코스로 정했으니 말이다.

막상 가보니 사당에서 2호선 갈아타는 것이 조금 길어서 힘들었다.

KakaoTalk_20250914_190837110.png

그때부터는 잘 있던 아이도 보채기 시작해서 정신이 쏙 빠지기 일보직전이었다.

2호선을 간신히 탔고 목적지인 "잠실역"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롯데 아쿠아리움으로 향하는 출구로 가던 나는 아주 높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와 마주했다.

"또 돌아가야 하거나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이 든 순간, 몸과 정신이 지쳐버렸다.

sticker sticker

물론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는 있었지만

이미 갈아타면서 에너지가 소진되었고

롯데 아쿠아리움에 입장한들

그 안을 구경할 기운이 나에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 돌아갈 2시간의 에너지를 위해 지금 롯데 아쿠아리움 목전에서 포기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다.


휴우.


그렇게 유모차 끌고 멀리 나가서 좋은 것 구경하고 먹고 할 내 첫 목표는

높은 계단과 높은 에스컬레이터 벽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용기를 내서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아쿠아리움 갔어야 하지만!!

내겐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에너지를 아껴두어야 했기에

첫 여정의 실패를 씩씩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 끌고 어딘가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임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뼈저리게 체감한 순간이었다.




#.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에 대해 알아보다.


몰랐는데 나는 "교통약자"였다.

바로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교통약자란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2조 1항)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교통약자(交通弱者)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에 이동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여 사람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교통약자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전문개정 2012.6.1] [[시행일 2012.12.2]]


이런 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나 또한 교통약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법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출구 앞에서 너무나 돌아가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첫 여정의 실패를 계기로 엄청나게 똑똑해졌다.

저 날 이후 비교적 가기 쉬운 역부터 가기 시작했고,

역에 전화해서


교통약자인 나: 3번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유모차를 끌고 갑니다. 어느 출구로 나가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나요?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역무원 대답: 3번 출구로 나가신다면
도착하셔서 연락주시면 마중 나가서 유모차를 같이 들어드리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조금 멀어서요.
연락주세요.

(오~~~~~~~~~~~~~~~~~~~~~~~~~~~)



고맙습니다.
우리나라 역무원님 만세!!!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이제 높은 계단과 높은 에스컬레이터 벽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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